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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새 역사교과서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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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03 21:48:46 수정 : 2016-02-03 21: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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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
육사 건립한 한국군의 아버지
전쟁고아들의 키다리 아저씨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미국 투자 유도 등 경제발전 지원
중공업중심 울산공업단지 후원
우리 교과서에 한동안 등장했다가 사라진 인물이 있다. 제임스 A 밴플리트이다. 6·25전쟁 때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지휘했다. 4성장군이던 밴플리트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위기에 처했던 한국을 구해냈다.

태릉 육사에는 그의 땀과 비전이 배어 있다. 육사 건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지인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했다. 미 공병대 자재를 육사 예정부지에 쌓아놓고 인재육성의 요람을 꿈꾸었다. 나중에 자재유용을 이유로 고발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해명까지 했다. 미 웨스트포인트의 교육담당이던 사위에게 요청해 교육 프로그램을 가져다가 육사에 안착시켰다. 육사 교정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정일권 백선엽 장도영 박정희 등은 그의 후원으로 미 참모학교 등에서 유학했다. 그는 또 야전훈련사령부 등을 설치해 중간간부를 길러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용걸 논설위원
그는 전역 후에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 한·미관계가 껄끄러워지자 중재자로 나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알렸고, 한국 정부에 한·미관계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조언했다.

전후 재건에 전력투구하던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AID(국제개발처)와 민간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막후에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2년 5월 미국 기업인 28명으로 구성된 투자사절단을 이끌고 ‘울산공업단지’를 방문했다. 팻말만 꽂혀 있던 보리밭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밴플리트는 춘궁기인 보릿고개를 재치 있게 설명하며 한국의 미래에 투자할 것을 설득했다. 울산 보리밭이 오늘날 세계적인 공업도시로 변모하게 된 이면에는 그의 기여가 컸다. 그는 제주도에 농장을 설립, 텍사스 소를 보내 키우도록 했다. 전후 복구사업으로 주택건설도 추진했다. 폐허나 다름없던 이화여대 중앙대 경기여고 등에 피아노를 보냈다. 기업인투자 유치단을 이끌고 미국에 날아간 이병철 삼성 회장이 한때 손을 벌린 곳도 그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전쟁고아들의 키다리 아저씨이기도 했다. 미국 단체들로부터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조달받아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의 관사에서 심부름하던 소녀에게는 대학 진학 때까지 후원했다. 그녀가 교사로 임용된 뒤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듣고는 먼 이국에서 돈을 보내 의사를 주선하고 치료토록 했다.

폭격기 파일럿이었던 그의 아들은 야간임무를 수행하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젊은 며느리와 어린 손자는 졸지에 전사자 가족이 됐다. 뒤늦게 공개된 아들 제임스 중위의 편지는 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어머니, 아버지는 한국에서 저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나라의 부름에 답하여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저의 부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딸은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전쟁터에서 귀가한 직후여서 다시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아들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파일럿훈련을 받으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이 스토리는 1955∼1973년 우리 교과서에 실렸다. 초등학생용 바른생활(4학년 1학기)에 ‘밴플리트 장군과 그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6쪽에 걸쳐 소개됐다. 최근 아들 동상이 오산 미공군기지에 세워졌다.

50대 중반이 넘은 인사들은 밴플리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세대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가 밴플리트 우표를 발간한 게 그나마 흔적을 더듬어본 ‘사건’이다.

밴플리트 손자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증손녀는 사실상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한다. 그의 외손자 조 맥크리스천(육사 프로그램 제공했던 사위의 아들)씨는 한국을 종종 방문한다. 가풍에 따라 육사를 졸업한 맥크리스천은 한국이 외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1957년 한·미관계 발전을 목표로 설립한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활동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크다. 최근 밴플리트재단을 만들어 외할아버지의 유지를 되살리고 있다.

정부가 중고교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꾸리고 편찬을 시작했다. 새로운 교과서에 한국 현대사에 궤적을 남긴 밴플리트가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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