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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칼럼] 창조의 뿌리는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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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31 20:09:15 수정 : 2016-01-31 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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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특강 유행이지만 대학선 구조조정에 내몰려
인간가치 탐구 소홀해선 안돼
우리 사회 만연한 졸속주의, 인문정신의 결여 탓 아닐까
창조적 발상과 아이디어가 선두를 견인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이는 현정부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정책인 창조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지금 사회 도처에서 인문학 특강이 유행처럼 열리고 있어 어찌 보면 인문학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과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반값등록금으로 인해 재정이 고갈된 대학들은 정부 당국의 공학 중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계획서를 만드느라고 여념이 없다.

정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의 대학들은 생존전략으로 앞다퉈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요란하게 펼쳐지는 인문학이 정작 대학에서는 고사 직전의 상황에 몰리고 있어도 이런 위기의식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논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률이 낮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대학 졸업생 전체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 졸업 일자리로 그대로 연결되는 직선적인 코스는 어느 시대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힘든 모색 과정을 치른 다음 얻어지는 것이 평생의 일자리다. 

최동호 시인·고려대 명예교수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2006년 필자는 고려대 인문학 교수들과 뜻을 같이해 ‘인문학선언’을 했고 뒤이어 전국의 80여개 인문대 학장들이 모여 같은 취지의 인문학선언에 동참했다. 당시 사회적 반향과 호응이 컸으나 그것도 잠시, 인문학은 점점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늘날은 공과대학이나 경영대학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 당국이 이 두 전공 영역으로 인문학전공을 통폐합하기 위해 최근 거대한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 ‘프라임사업’이다. 물론 당장 취업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교육정책은 백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음미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취업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 다음 두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취업생 상당수가 첫 직장에서 2.3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취업생 상당수가 눈앞에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지만 창조적인 응용능력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창조정신이 없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전자산업 후발주자인 중국의 맹렬한 추격으로 한국 전자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이는 다른 업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창조정신 없이 다른 경제대국과 경쟁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률만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은 정부 당국에서 내세운 창조문화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이며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는 “인문학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우주를 놀라게 하자”던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도 인문적 교양과 상상력으로 인간과 기계를 결합시켜 탄생한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존재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학문적 영역이다.

2014년 미국과학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공과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4.5%에 불과할 뿐이다. 일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 학문인 자연과학 분야에서 배 이상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그들의 교육정책이다. 장기적인 요구와 미래의 더 큰 창조적 가치를 창출할 원천 교육을 중시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중요성도 그런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모든 졸속주의에 따른 병폐는 일회성 인문학 특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문정신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속단일까.

최동호 시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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