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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도 사라지지 않는 수취인불명의 죽음들

입력 : 2016-01-21 20:14:20 수정 : 2016-01-21 20: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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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장편 ‘소각의 여왕’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묵인.”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펼쳐오다 지난해 말에는 2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이유(47·사진)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은 우리 사회의 쓸쓸한 죽음들을 들여다본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의 딸 해미는 재수 대신 아버지의 고물상을 도와 버려진 것들로 생계를 유지한다. 고물값이 떨어져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자 지창씨는 우연히 소개받은 일을 부업으로 삼는다. 그 일은 죽은 이의 시취가 밴 유품을 처리하고 구더기가 끓는 공간을 청소하는 ‘유품처리업’이었다. 딸 모르게 하던 이 일이 어느 사이 해미의 몫이 돼버렸고 지창씨는 고철에서 희귀금속 이트륨을 뽑아내 큰 돈을 버는 일에 끌려든다.

해미가 유품 처리를 하면서 다양한 죽음들을 목격하는 과정이 2부에 본격 펼쳐지거니와 그 양상들이 쓸쓸하고 충격적이다. 시신의 부패 상태나 집 앞에 쌓인 택배에 찍힌 날짜, 유서 등으로 미뤄 삼 개월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 빌라 아래층 여자가 뒤늦게 신고한 그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집주인은 임대가 안 될까봐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해미의 부친 지창씨도 희귀금속 성분 통보 서류를 가슴에 안고 말미에 죽음을 맞는다. 해미도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1t 포터 트럭으로 죽음을 깔고 혼몽하게 달린다. 한마디로 “한쪽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작가는 썼다. 어두운 소재지만 시종 절제되고 단아한 문체로 그려내 연민에 함몰되지 않는 설득력이 돋보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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