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종심에 이르러도 부끄러움만 쌓이는 삶… 진솔한 고백 여운

입력 : 2016-01-14 20:41:20 수정 : 2016-01-14 20:41: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김광규 시인 ‘오른손이 아픈 날’ 펴내 “날이 저물어 새 모이 소반/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밤하늘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 끼룩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오늘도 시를 쓰지 못했구나”(‘새와 함께 보낸 하루’)

종심(從心) 전반기 4년 동안 쓴 시들을 모아 열한 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김광규(75·사진)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한 하루를 아쉬워한다. 시가 무엇이기에 ‘생의 마침표’가 그리 멀지 않은 연치에 이르러도 기도처럼 다가오는가.

시인은 “한여름 녹음 속에 처연하게 숨 멎은/ 동사목 두 그루/ 살아 있는 나무들만 바람에 수런거리고/ 마른 잎을 떨어버릴 수 있다는/ 수목의 유언에 귀 기울이며/ 말 없는 미라를 보듯/ 두고두고 바라보기만 할 뿐”(‘동사목凍死木’)이라고 안타까워하거나, “장마철에 잘못 태어나/ 축축하지 않니/ 해도 못 보고/ 꽃도 못 찾고/ 금방 땅으로 떨어질 듯/ 서투르게 나풀나풀 날아가는/ 하얀 나비 두 마리/ 풋사랑 이루지 못하고 비 맞으며/ 사라지는 어린 영혼들인가”(‘나비 두 마리’)라고 작은 생명들의 불운을 서러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모든 존재들이 연민의 대상이 되고 미구에 사라질 그들의 운명이 예사롭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살아온 내력의 부끄러운 계산속까지 솔직히 드러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는/ 가까운 벗 나의/ 온갖 부끄러움 속속들이 아는 친구/ 또 한 명이 떠나갔다 그렇다면/ 나의 부끄러움 그만큼 가려지고/ 가려진 만큼 줄어들었나/ 아니다/ 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몫까지/ 나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 내 몫의 부끄러움만 오히려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기억의 핏줄 속을 흐르며/ 눈감아도 망막에 떠오르는/ 침묵해도 귓속에 들려오는 그리고/ 지워버릴 수 없는/ 부끄러움이 속으로 쌓여/ 나이테를 늘리며/ 하루 또 하루/ 나를 살아가게 하는가”(‘부끄러운 계산’)

부끄러움의 나이테를 늘리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시인의 고백이 절실하다. 떠나간 벗들의 부끄러움까지 껴안는 기억의 핏줄이라니, 하릴없다. 시인은 자서에서도 “지난 40년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마음과 달리 노쇠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면서 “흰 눈에 뒤덮인 노년의 일상을 이렇게 천연색으로 드러내다니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다시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운 시인에게도 종내 포기할 수 없는 욕심이 있다.

“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몸의/ 부처”(‘누워 있는 부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