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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소설) 당선작 1



마주치는 얼굴마다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고는 한다. 가능성은 늘 과반 이상이었는데, 말을 거는 순간 후회할 착각이었지. 오히려 가능성을 점쳐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 웬 남자가 어느 사이엔가 틈입해 있곤 했다. 제멋대로이고 저돌적인 남자도 있었고, 고인 물처럼 아무런 의지 없던 남자, 훗날 이름 세 글자만이 문득 떠오르는 남자도 있었다. 처음 받아들였던 그는 나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다. 그의 자취방, 십이월 새벽이었다. 쫓겨난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겠다는 착각에 잠시 울었다가 겨울바람에 종종걸음 치면서 터미널로 돌아가 서울행 첫차를 기다렸다.

 
그림=박진홍 화가
예전에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들을 자주 읽었다. 브론테 자매, 울프, 뒤라스, 손택 같은, 아직 자기만의 방이 없었거나 이제 막 생겼던 시대의 서양 여성 작가들이었다. 손택이 젊었을 때 쓴 문학평론집의 경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대부분이라 지금은 레비 스트로스라는 인류학자가 쓴 기행문을 다룬 대목만이 기억에 남는다. 서구 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남미의 선사부족을 다룬 그 책을 두고 손택은 ‘슬픈 열대’라는 제목부터 아주 억제된 표현이라고 했다. 그들은 슬픈 정도가 아니라 고통 속에 신음한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아파트 정문 부스에서 방문 차량을 맞아 방명록을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해질녘이 되어 비좁은 부스를 나와 기지개를 켜다보면 천여 세대가 사는 고층 아파트 칸칸이 백열등을 밝힌 풍경이 올려다보였다. 슬프다는 표현이 억제되었다니. 약 한 세기 전 열대 선사부족들의 멸족이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나 같은 사람은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이문동의 붉은 벽돌집에서 엄마랑 살던 시기였다. 두 살 터울 오빠는 아버지 집이나 친구 자취방을 전전하다가도 어느 날 아침에 내 방과 큰 방을 잇는 거실이랄지 부엌이랄지 애매한 통로에 널브러져 잠들어 있고는 했다. 보험판매원인 엄마는 대개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와 요즘 애답지 않게 꼬락서니가 그게 뭐니, 따위의 잔소리를 툭 던지고는 방에 들어가 화장을 지웠다. 나는 퇴근하거나 일이 없는 날이면 냉장고에 남은 재료만으로 요리해 먹고 내 방에서 영화 DVD나 책들을 뒤적이다가 밤이 되면 일기장에 별거 없는 일상을 심각한 어투로 쓰고 잠들었다. 여름과 겨울이면 열리는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강좌를 듣고, 함께 수강하는 대학생들과 어울리다 그중 한 명과 사귀기도 했다. 내 이름이 흔해서 사람들은 성을 불렀다. 신, 씬. 그중 몇 명은 집에도 와서 내가 한 요리를 먹고 애매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맛없는 건 아닌데, 이상해. 나는 자주 그들의 별거 아닌 얘기를 들어줘야 했다. 계속 예술을 하고 싶어, 울던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대학원, 혹은 출판사에 들어갔거나 소식이 끊겼다. 나는 여전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느닷없는 오빠의 전화를 받고 놀라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에 안도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문득 생각이 나서 엄마 집에 들러 자다 가곤 한다. 내가 지냈던, 이제는 책과 DVD와 일기장들이 한편에 순서 없이 쌓여 있고 어릴 적 가족 앨범과 삭아가는 커튼이나 옷들이 담긴 플라스틱 상자들 따위가 방치된 골방이 외풍을 이유로 문 닫히고 그 앞에 머리끈으로 입을 동여맨 쌀자루가 기대어진 탓에, 나는 내 소맷자락이나 손목을 꼭 붙잡는 잠버릇이 있는 엄마 옆에 누워 새벽 어스름이 눈꺼풀 사이로 새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며시 빠져나와 화양동으로 돌아간다.

지금 내가 사는 방은 단출하다. 우선 휴대용 버너가 딸린 개수대와 화장실이 있다. 냉장고와, 옷을 걸어두는 행어, 철 지난 이불이라든지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장이 있다. 내가 눕는 자리 옆 벽에는 옆집 벽이 보이는 창이 있다. 같은 담을 공유한 두 집의 벽과 벽은 양쪽에서 손을 내밀면 맞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반대편 집 벽에는 얼굴도 못 내밀 만큼 작은 화장실 창들이 서로 층별 높이가 다른지 이쪽 벽 창 위치와 엇갈려 박혀 있다. 나와 마주 보는 눈높이에는 금이 가고 있는 벽돌들뿐이다. 옆집 벽에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야 알았다. 잿빛으로 바랜 붉은 벽돌들에 간 실금이 담쟁이덩굴 뿌리처럼 뻗어 내려가더니 가장 위쪽 벽돌부터 두 조각 나기 시작했다. 두 조각 났지만, 그래도 제자리에 박혀 있어 나는 옆집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제자리에 박히지 않았다면 이미 무너져 내렸다는 뜻이겠지만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저 벽이 무너지면 마침 화장실에서 알몸으로 씻거나 볼일을 보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따져보게 된다. 아무래도 부끄럽겠지. 치부를 가리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갈 것이다. 부끄러울 새도 없이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울 새도 없다니, 단박에 죽는다는 거잖아. 아프겠지. 하지만 머리에 직격으로 벽돌을 맞는다면?

내 방에는 이제 책이 없다. 일기를 쓰지 않은 지 오래다. 화양동에 온 뒤, 간혹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그날의 일을 문장으로 맺어놓을 때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인터넷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내가 왜 이렇게 썼는지 가물가물해지거나 다시금 읽어보고 나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면 삭제했다. 석이 그날 내게 했던 별거 아닌 말은 블로그에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 말을 삭제하고 난 뒤로 더는 새 글을 올리지 않았다. 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누군가가 어쩌면 나와 만나기 전후로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는 글을 블로그 방명록에 남기고 간 뒤부터이기도 하다.







나는 학습지 물류센터에 취직했다. 아침 7시 반에 화양동 골목에서 도로가로 나와 걷다가 물류센터들이 운집한 속으로 들어가 키 낮은 영산홍 울타리를 풀쩍 넘어서면 사다리꼴 슬레이트 외벽 건물에 도착하게 된다. 1층 집하장 안 화물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작업장에 들어서면 이미 같은 팀 아줌마들이 멈춰버린 컨베이어 벨트 주변에 골판지를 깔고 앉아 두런거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지게차를 모는 사내 서넛이 부스스한 몰골로 출근하고 뒤이어 작업팀장이 회의를 마치고 나타나 그날의 물량과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얼마 안 가 작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석은 자전거로 한강을 건너 출근했다. 물류센터에 도착하고 나면 추운 날씨에도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했다. 개포동에서부터 양재천과 탄천을 거쳐 영동대교를 건너오기까지 석에게는 20분이면 충분했는데 왜인지 늘 작업 시작 직전에야 도착하고는 했다. 골판지 냄새가 풍기는 싸늘한 작업장에서 반팔 밑자락을 펄럭이며 땀을 식히던, 함께 일하는 아줌마가 또 늦잠을 잤느냐고 말을 붙이면 쳐다보지도 않고 한 손을 내젓던 석의 모습은 겨울이 오기 전 무렵 차에 치여 입원하는 바람에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석은 덩치가 컸다. 지게차에 구부정하니 앉아 팰릿을 뜨는 모습은 마치 제 살비듬만 한 바늘에 실을 꿰려고 진땀 흘리는 거인 같았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상자에 순서대로 학습지를 놓다가도 석이 제 몸보다 작은 병상에 누워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꼼짝 못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몸은 어떻게 긁지. 오래 누워 있으면 등이 가려운 법인데. 그럴 때는 좁쌀만 한 벌레가 등을 기어 다니다가 마침내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되는데, 석이 알기나 할까. 그러다 깜박 내 순서를 넘기면 다음 차례인 아줌마가 내가 쥐고 있던 학습지를 낚아채 상자에 집어넣으며 눈을 흘기고는 쏘아붙였다. 씬, 정신! 아줌마들은 석을 좋아했다. 다 큰 조카 같다며 도시락도 덜어주고 땀도 닦아주기도 하던 그녀들은 그가 작업장에서 사라진 첫날에만 호들갑을 떨더니 이내 그런 사람 없었다는 듯 싹 입을 닫아버렸다. 조카 같은 존재란 게 이렇게 쉽게 잊히는 구나, 싶으면서도 쉽게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바닥에서야 당연한 거겠지, 그때 나는 그렇게 여겼다.

석은 새해 2월이 되자 살이 조금 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지켜가며 자전거로 출근했고, 다시금 살갑게 달라붙는 아줌마들을 제쳐두고 왜인지 붙임성이 좋아져서 똑똑한 누나라고 부르며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점심이면 한 층 위 휴게실로 올라가 창가 테이블에서 도시락을 먹던 내 곁에 앉아 탁 트여 좋네, 따위의 실없는 소리를 한마디 하고는 컵라면을 빠르게 해치우고 먼저 내려가던 석. 나는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창 아래 일목요연하게 줄지어 심긴 영산홍에 시선을 박아두고는 했다. 



겨울이 다 가기 전, 처음으로 석의 반지하방에 갔을 때 나는 냉장고부터 열었다. 녀석이 도대체 뭘 먹고 커다란 덩치를 유지한 건지. 떡볶이용 떡 반 봉지와 양파 세 개, 그리고 마른 흙바닥처럼 갈라진 고추장을 꺼내 요리를 했다. 양파를 전부 썰어 넣어서인지 생각만큼 빨갛지도 않은 데다 떡볶이인지 떡을 버무린 양파 볶음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요리였다. 석이 프라이팬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어대며 먹는 걸 보면서, 이상해,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양파가 제일 좋아.

석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골탕을 먹이려다가 되레 당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석의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나는 괜히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설거지는 네가 해. 이참에 방도 청소해. 지금 해, 어서. 다 하는 거 보고 갈 거야. 나는 석의 살 냄새가 나는 이불로 몸을 감싸고 앉아 석이 빗자루를 들고 곰같이 어슬렁거리는 꼴을 지켜봤다. 양파를 제일 좋아한다니, 집에 가면 블로그에 그 말을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날 저녁 석과 나는 섹스를 마치고 그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봤다. 연예인들이 남미의 오지로 가서 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나뭇가지를 비비며 불을 지피려고 애쓰는 과정을 보면서 석은 그 방면의 전문가인 것처럼 답답해했고, 나는 분명 카메라 앞에서만 저렇지 나중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편집으로 짜 맞췄을 거라고 했다. 석은 설마, 하면서도 그래, 누나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수긍했다. 석이 뜬금없이 말을 꺼낸 건 프로그램이 끝난 뒤였다. 아직 잘 때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술을 사와야 하나, 아니면 서로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섹스를 한 번 더 해야 하나, 얘기를 나누기에는 할 말이 없는데, 그런 생각들을 나는 하고 있었다.

책을 읽어볼까 하는데.

석이 내 손을 찾아 쥐고 작은 눈을 굴리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거 없나. 나는 순간 내가 기억하는 작가들을 떠올렸다가 석이 그런 걸 좋아할 리가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본 아랫도리만 가린 부족들이 어른거렸고, 불현듯 레비 스트로스가 쓴 ‘슬픈 열대’가 떠오르는 동시에 내가 제목만 알지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대답 없이 석의 손을 맞잡았다. 석이 이번에는 다른 걸 물었다. 누나,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건가. 나는 손톱을 세워 맞잡은 석의 손바닥을 눌렀다. 누나라고 부르지 마.

나는 내가 중학생 때 얘기를 들려주었다. 친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서로 사귀는 척해서 아이들을 속이자고 그 애가 그러더라고. 그런데 아이들이 속아 넘어간 뒤에도 그 애가 사실을 밝히지 않아서, 내가 아니라고 해도 아이들이 믿지 않아 곤란했다고. 석은 왜 그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마, 소연아. 나는 간지럼을 탄 것처럼 킥킥거리고는 몇 번 석의 얼굴에 입 맞추며 내 이름을 다시 듣기를 바랐다. 막상 석이 다시 한 번, 소연아,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어서, 라고 재촉하자 나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들어서 옷을 주워 입었다. 자전거로 태워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전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지난 남자들이 뭐라 말하면서 사귀자고 했는지 얼마나 예전에 그 말들이 빛바랬는지를 떠올려가며 대답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3



나는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혈액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사흘쯤 걸린다고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저녁 7시에 퇴근하고 나서 자전거를 끌고 따라오는 석을 돌려보내고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내 방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개새끼, 소리 내어 욕을 내뱉고 나서 내 목소리가 방 안을 메아리친 것처럼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다. 지난 남자를 미워한 때가 얼마나 오래전의 얘기인지. 그들 중에 연락이나 소식이 닿는 사람은 없었다. 앞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으면서 나는 누구일지 생각했다.

방명록에 글을 남긴 뜻 모를 영문 아이디는 인터넷 어디에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왜지? 왜 이제 와서? 머리카락은 별로 따끔하지도 않고 쑥쑥 잘 뽑혔다. 나는 머리카락 뽑기를 그만두었다. 그날 석이랑 할 때 콘돔을 썼나. 썼지.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혹시 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병균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은 자꾸만 석과의 섹스로, 과거의 다른 남자들과의 섹스로 시야를 뻗쳐 나가다가 마침내는 속으로 침투하여, 질 내부에서 꿈틀거리던 음경에 달라붙는 병균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밤이 되자 나는 이불을 펴고 불을 껐다. 휴대폰 알람을 맞추고는 블로그 방명록에 접속해 다시금 찬찬히 읽어본 뒤 댓글난을 열고 입력했다. 더러운 새끼. 거짓말이면 경찰서에 신고할 줄 알아. 인터넷에 숨지 말고 어디 내 앞에 나타나서 직접 말해봐, 더러운 새끼야. 나는 눈을 감고 감정의 반향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아마도 이 근처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일 한 무리가 술 취한 목소리로 세상 한탄을 하면서 지나갔다. 뒤이어, 이 방에 정말 나 하나뿐이구나, 하는 정적이 찾아왔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앞으로도 나 혼자뿐이겠구나. 나는 무의식중에 찌푸리고 있던 눈살에 힘을 풀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듣고 있어?

위층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아마 늦은 밤까지 혼자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듣고 있냐고, 개새끼야. 듣고 있기는 뭘 듣고 있어, 씨팔, 안 듣고 있잖아. 대답해봐. 야, 니가 날 알아?

나는 그 아이가 왜 혼자 남겨져 욕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부모님이 주말에도 일하는 맞벌이고 아이는 그 영향을 받아 집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외톨이일 수도 있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말처럼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추측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앳된 목소리로 보아 초등학생이었을 아이는 나보다 늦게 등교하고 나보다 일찍 하교했을 터였다. 나는 듣고 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를 생각하며 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면전에 욕할 자신은 없겠지. 뚜렷한 상대가 없어서 혼자 남아 욕을 하고 있는지도. 왜 하필 욕일까? 나는 불현듯 다시 블로그 방명록에 접속해 댓글을 삭제했다. 혼자 계속 떠들어 보라지. 그제야 방명록에 남겨진 메시지가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흘 동안 석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 커다란 녀석이 어깨를 수그리고 다니니 난쟁이 친구를 실수로 밟고 상심한 거인이 떠올랐다. 석은 첫날만 그랬지 다음 날에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림=박진홍 화가
나는 쉽게 시작하면 쉽게 끝나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퇴근하는 걸음은 반 박자 느려졌다. 석 같은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생각해 보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남자. 땀 흘리는 걸 좋아하는 남자. 책을 읽지 않은 남자.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사르트르와 카뮈를 좋아했고 하나같이 석보다 키가 작았다. 그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이 세상이 잘못된 이유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여성이 사회에서 얼마나 불공평한 대접을 받는지 성토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내 속마음을 궁금해해서 나는 자주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들과 싸울 때는 침묵이 가장 좋은 무기였다. 누구는 내게 침묵 역시 하나의 폭력이라고, 네 아버지가 폭력을 썼듯이 너 역시 마찬가지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들과는 헤어지기가 힘들어 몇 번을 번복해야 했다. 석이 퇴근길에 아줌마 둘이 도란거리는 속에서 묵묵히 자전거를 끌며 그들의 작은 발걸음에 맞춰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석이 여자에게 어떤 남자일지 여자는 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익숙한 화양동 골목에 홀로 들어서자 쓸데없는 생각들로부터도 멀어졌지만 대신 춥고 울적해졌다.

사흘째에 나는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받았다. 블로그를 탈퇴했다. 그날 점심에 나는 석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식사를 했다. 석에게 앞으로 작업장에서는 친한 척 굴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자전거를 싫어하니 퇴근길에 태워다주지도 말라고 했다. 너 자전거 탈 때 차는 조심하고 다니기는 하는 거야? 석은 묵묵히 밥알을 씹고 있었다. 그 덩치 큰 녀석이 말 없으니 괜히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편하게 굴까 고민하는 찰나에 석이 말했다.

재미있는 소설 좀 추천해줘.

굵직하지만 소설이라는 단어를 처음 발음해보는 듯이 어눌한 목소리였다. 어쩐지 다른 무언가가 석의 입을 빌려 내게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의 둔감해 보이는 눈빛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다가 나는 대답했다.

나중에.

다시 물류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한 달 전에 그만두었던 아줌마를 마주쳤다. 최고참 중 하나인 그녀는 석에게 한 달을 쉬고 다시 계약을 하러 온 거라며 한창 욕을 구시렁거리다가 문득 나를 불렀다.

씬! 석이 조카랑 놀다 오는 거야? 일하다 안 피곤하겠어?

아줌마가 빤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는 망설였다. 어느새 마뜩잖다는 듯이 눈살을 찡그리던 아줌마는 어머, 정신 좀 봐, 자기 있잖아, 이거, 하면서 들고 있던 종이가방에서 드링크제 두 병을 꺼내 석에게 건네주었다. 석이 하나를 까서 한 모금에 병을 비우고 나머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벌써 봄이야, 봄. 자기는 모르지? 저 영산홍 말이야. 봄이 와도 꽃이 안 피더라니까. 맨날 트럭이 오락가락해서 매연이나 먹으니 필 꽃도 안 피지. 봄이 오면 뭐해. 일하다 창 내려다 봐, 온통 시멘트에, 꽃 하나 없고 칙칙하기만 하고. 젊은 사람들이 괜히 금방 나가냐고. 그래도 대기업이다 뭐다 하니까 자르지는 않는데 근데 다 똑같아, 봐봐, 나 몇 년 일했어, 근데도 이렇게 또 계약하러 가잖아. 그래, 나 같은 노땅이야 불러만 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지, 나도 씬이랑 석이처럼 젊어봐, 아주 그냥…….

아줌마는 엘리베이터에 타고서부터 말이 없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드링크제를 석의 작업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석이 나를 내려다보다가 그것마저도 마셨다. 문이 열리자 아줌마는 도시락을 치우던 사람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동동거리듯이 달려 나갔다.



4



한국이 슬프다.

몇 해 전이었더라, 어느 날 섹스를 마친 뒤 그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한 외국인 노동자가 분신자살하기 전에 벽에 적어 남긴 유언이고 그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 허리께를 쓰다듬는 한편 오줌색 천장을 멀거니 올려다보면서 계속 말했다.

세계에는 나쁜 법칙이 있어. 가난한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 같은 거. 그런데 그건 잘못된 거거든. 원래 세계는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은데 나쁜 법칙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쁜 걸 몰아주는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세계가 그렇지 않은데도 세계가 원래 그런 줄 알게 되는 거지. 소설의 임무는 이 나쁜 법칙을 전복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 라고 대답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는 건 아니야,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작년 4월부터 석은 나와 함께 화양동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전에 그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함께 찍은 동영상이 자신의 옛 컴퓨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절대 협박하는 것이 아니고 삭제를 할 것이지만 혹시 모르니 만나 논의해서 서로 안심하도록 깔끔하게 처리하자는 내용이었다. 그가 나를 자극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위악적인 체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고, 실은 지난 남자들이 관계의 말로에야 탄로 난 나약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쉽게 그러했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여전히 한편의 죄책감을 통하여, 돌이킬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옛 추억이자 자신과 달랐다는 이유로 미지의 존재로 둔갑시킨 나에 대한 향수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이메일 주소까지 알아낼 정도면 집 주소도 얼마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정 살인이 가끔씩 인터넷 뉴스 메인을 장식하던 때였다. 대개 못사는 동네에서 못사는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일이었다. 당연한 건가. 못사는 동네니까 치안이 허술할 테지만 사람이 단지 조건이 성립된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잖아. 가난하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건가. 자기가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해서 죽인 거겠지. 해를 끼치고 싶다고 생각한 거겠지. 가난해서 그러든 심성이 원래 글러먹었든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될 만하고 가난할 만한 거잖아. 사람이라면 해를 끼치지 말아야지. 나쁜 걸 몰아준다고 나쁜 걸 다 몰아 받는 것도 참 게으르고 나빠.

석과 살림을 합치니 돈을 더 많이 저축할 수 있게 되었다. 석은 더는 먼 거리를 위험하게 질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주말이면 석은 자전거를 끌고 가까운 한강변으로 갔다. 몸을 가만히 놔두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몸이 쑤셔온다고 했다. 땀을 흘리며 움직여야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난여름 나는 석과 함께 뒹굴며 땀을 흘렸고 그는 지치는 법이 없었다. 그 무렵의 석을 생각하면 섹스 뒤의 식사가 떠오르기 마련으로, 소모한 열량을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통조림 참치나 햄 따위를 남은 반찬과 같이 볶아 둘이서 묵묵히 양푼 한 그릇을 비우던 그때를 나는 지금도 막연히 그리워하다가도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조용한 방 한 구석을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듯이 골똘히 멍해지고는 한다.

석의 단순함이 좋았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단순하지만, 신중하지는 못하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석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도왔고 그의 퇴근 뒤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공부 한 거 안 까먹었는지 테스트해볼 거야. 장보러 가자. 오늘은 대청소야. 오늘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석을 엄마에게로 데려가 보험을 가입시켰다. 석의 월급까지 함께 관리하며 저축해갔고, 그해가 지나면 더 큰 방으로 옮기거나, 어쩌면 좀 더 모아서 방 두 곳에 부엌이 따로 있는 데로 세들 생각까지 했다. 어쨌거나 석에게는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그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세간에 부딪치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려 나를 깨우는 탓에, 이 사람은 무슨 꿈에서 뭐라 말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곰곰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석은 꿈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한동안 쌍꺼풀이 더 진해진 눈으로 벽이 보이는 창을 노려보고는 했다.

말수가 적은 석. 그때 그 겨울에 말도 나눈 적 없던 내게 왜 말을 건넸는지 나는 지금도 짐작만 할 뿐이다. 작업장에서 그나마 가장 어린 여자였으니까, 똑똑한 누나니까……. 아무래도 죽다 살아났으니 기댈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겠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 홀로 꼼짝도 못하고 누워 나를 생각했을 석을 상상해 본다. 내게 말을 걸 연습을 했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좋네, 따위가 아닌, 속내에 있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석이 내게, 내가 석에게 전해주었던가. 무언가를. 남들에게는 감추고 싶던 무언가를. 아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말은 진심을 포장한다.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진심이란 이기적이고 끔찍하니까. 석은 단지 단순한 사람일까? 최소한 나에게는 물었어야 했다. 그때는 모든 걸 막연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석을, 사람들을.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막연하게 낮잡아서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그어버리고, 선을 넘어오면 나는 책상을 넘어온 짝꿍의 지우개를 뺏듯이 당신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소심해져 선을 내 쪽으로 바투 당겨 다시 긋고, 그렇지만 받아들이기는 대체로 벅찬 법이니 선을 다시 긋고 다시 긋고…….

징조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엄마는 사람은 꼴값과 덩치 값을 하는 법이라고 석을 싫어했다. 석은 공부에 오래 집중하지 못했고, 손에 비해 작은 연필을 쥐고 코끝에 땀방울이 맺혀가도록 문제집을 노려보았다. 무심결에 힘이 들어가 연필을 부러뜨린 적도 있었다. 윗방에서 혼잣말로 욕하는 아이를 두고, 병신 같아, 쪼다 새끼라고 낄낄대던 석. 그래, 아줌마들, 그들은 쭈그렸다가 일어서가며 작업 선반에 무거운 학습지 뭉치를 가득 채워놓는 일 따위를 내게 몰아 시켰다. 석은 공부를 피해 자꾸만 자전거를 타러 밖으로 나갔다. 나와 함께 살게 된 뒤로 더는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석과의 잠자리, 언제나 내게 순종적이던 그, 자기들끼리 모여들어 쑥덕거리던 아줌마들, 늘어가던 작업량과 그에 반비례하던 작업장의 분위기, 한창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던 회사, 사람들이 볼까 서로 떨어져 걷던 퇴근길, 토사물 썩은 내가 나던 화양동 골목, 집주인 간에 얘기 돌던 재건축 소식, 옆집의 붉은 벽돌 벽, 야, 말해봐, 말해보라고 홀로 다그치던 윗방 아이, 욕설을 들으면서 이 동네를 과연 내가 떠날 수 있을까, 내가 막연하게 품어왔던 미지의 두려움과 같은 기억들로 짜인 구속복을 입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생각해왔다.



5



그해 11월, 인터넷 신문사에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가 기재되었다. 광진구의 모 학습지 물류센터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K씨를 상대로 직장 동료인 유부녀 여덟 명이 원만한 직장 생활을 빌미로 근처의 모텔에서 십수 차례에 걸쳐 약 1년 6개월간 난교를 벌였고 뒤늦게 안 K씨의 동거녀인 S씨가 사내 직원 전용 게시판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사측에서는 학습지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쉬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장 노동자를 욕하는 악성 댓글들이 달렸고 얼마 안 가 모 학습지 물류센터가 속한 회사명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신문사에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한다고 엄포를 놓고, 인사부에서 사람이 나와 당사자들을 차례차례 신문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아줌마들이 해고되었다.

주동자 세 명이 해고 통지를 받았고 나머지 아줌마들도 몇 달 안 가 계약기간 만료로 떠나야만 했다. 작업팀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지방으로 인사 배치되었다. 새 상사가 들어오고 다른 팀에서 차출한 아줌마들과 신입으로 인원 공백이 메꿔졌다. 석은 당장 물류센터 내 다른 작업장으로 재배치되었다. 나는 수차례 사무실로 불려가서 간부들에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내가 인터넷에 배포하고 기사를 제보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사내 직원들만 볼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게 다다, 석 역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다른 지부로의 인사이동을 종용했다. 나는 서울을 떠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회사는 어떻게든 조용히 마무리하려 했다. 나를 비롯한 당사자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일 역시 없었다. 휴게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다보면 소문들을 듣기 마련이었다. 아줌마 누구누구는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라더라, 남자가 피해자다, 아니다, 다 큰 남자가 그게 섰으니까 했겠지 억지로 했으면 섰겠나, 알고 보니 그 여편네들이 동영상을 찍어 협박했다더라, 기사를 제보한 사람은 누굴까, 뻔하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 아니겠어…….



해고 통지를 받은 세 명이 떠나는 날이었다. 퇴근 시간이었고 정식으로 작별 인사할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물류센터 입구에서 세 아줌마는 남은 아줌마들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서로에게 하소연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니. 나가서도 잘살아야 해. 딸이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데 또 어딜 가서 돈을 번다니.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그들을 지나자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누가 나를 불렀다. 씬.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분해서 그랬던 것인데 그들의 목소리가 따라오니 무서워서 발을 재게 놀렸다.

미안해. 우리는 씬도 그런 건 줄 알았어. 우리 말 좀 들어봐. 그냥, 그냥 외로웠던 거야. 알잖아, 씬.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랫사람들끼리 같이 일하고 만나고 그러다 보니까…… 응? 씬이랑 같이 살게 된 줄 알았으면 그만했을 거야. 씬, 그냥 가기야? 야, 씬, 미안해. 우리같이 늙은 사람들이 창창한 젊은 사람들 앞길 막아서 미안하다고. 똑똑한 너는 이해 못하겠지, 어? 너지? 신문에 꼰지른 거. 너 때문에 가정도 파탄 나고, 고맙다, 야! 잘난 네가 왜 석이를 만나는지 모르겠는데, 걔한테 물어봐. 알아? 아냐고.

나는 뛰다시피 걸어 원래 가던 길이 아니라 전철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도로 나와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거리의 상가마다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주 오는 대학생들과 어깨를 부딪쳐가면서 화양동 방향으로 걸어갔다. 알아. 안다고. 석에게 전부 들었다.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자고 해서 했다고.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아서 안 하지 않았다고. 나는 석에게 물었다. 그게 전부야? 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간신히 말했다. 하지 마. 내가 해결해줄게. 하지 않게 해줄게. 그러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인파를 뒤돌아보고 나서 나는 도로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내 또래의 남녀들을 올려다보았다. 주로 남자들을 올려다보았다. 걸치고 있던 작업 점퍼를 벗어 개켜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완전한 밤이 되자 나는 떨면서 방으로 향했다.



그림=박진홍 화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에 접혀 놓여 있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켰던 불을 도로 끄고 벽에 기대앉아 훌쩍였다. 늦은 밤이 되자 불을 켜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앉았다. 석을 기다렸다.

날이 밝는 대로 석의 짐을 다 꺼내서 버리기로 다짐하면서 설핏 졸던 참이었다. 천장에서 윗방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듣고 있어? 좆같은 새끼야.

아이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고 또 한창 욕질이었다. 나는 행어에서 옷걸이 집게 봉을 꺼내들고 천장을 두드렸다.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욕을 시작했다. 화가 났다. 화가 나니 턱이 덜덜 떨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듣고 있어. 말해봐.

나는 까치발을 딛고 서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천장에 대고 소리쳤다.

욕하지 말고 말해봐. 듣고 있어. 욕만 하면 듣는 사람은 무슨 일인지 모르잖아. 누나 오늘 슬퍼. 좆같은 이 동네에서 좆같은 일 당해서 슬프다고. 이딴 동네는 뭐 이딴 좆같은 일만 일어난다니. 말해봐. 누나가 들어줄게. 얘. 듣고 있어?

대답을 기다리다가 나는 잠들었다.

잠결에 얼핏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6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얼마 전에야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었고, 바로 이해하기 어려워서 다시 앞 장을 들춰가며 읽었다. 젊은 시절의 레비 스트로스가 모국인 프랑스에서부터 아메리카 대륙, 인도 대륙을 오고 가며 겪은 정경들과 낯선 이름을 가진 남미의 선사부족들에 관한 보고로 이루어진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 나와는 먼 이야기였고 그럼에도 왜 자꾸만 그 책을 떠올렸는지, 아마 손택이 쓴 대목 한 구절이 암세포처럼 내 머릿속에 심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나는 화양동에서 석과 함께 살고 있다.



석은 계약기간 만료 이후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며칠 안 가 그만두었다. 얼마 전에는 검정고시마저도 떨어졌다. 석은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석이 자전거를 타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 그는 이제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 동면에 든 육식동물처럼 석은 내가 없는 사이 방에 있는 식료품들을 조리도 않고 날것 그대로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가 자다가 발 한 쪽이라도 내 몸 위에 올려놓으면 나는 내가 사는 붉은 벽돌집이 무너져 내려 압사당하고 마는 악몽을 꾸고야 만다.

석이 깨어 있을 때면 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늘 직장에서 어쩌고저쩌고가 아니라, 오래전에 잊었다고 믿었던 이야기들, 처음 서울로 이사 온 이야기에서부터 아버지가 자전거를 가르쳐줬던 이야기, 오빠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먼 타지에서 우리를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엄마가 번번이 재혼에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 ‘슬픈 열대’를 한창 읽을 때는 내가 이해한 것 같은 구절을 풀어서 설명해주기도 했다.

여기, 남아메리카 대륙과 인도 대륙이 있다. 남아메리카는 적은 인구에 비해 자원이 풍부하고, 인도는 자원이 적은 대신 인구가 비대칭적으로 많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풍족하게 자원이 분배되니 차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침략해 와서 땅을 점령하여 자원이 한정되기 시작하면서 선사부족들에게도 계급이 생기고 차별이 생겨난 것이다. 인도는 애초부터 공평하게 자원이 분배되는 것이 불가능하여 카스트 제도가 생기고 계급에 따라 자원이 차등 분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긴 시간 동안 평등을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걸 레비 스트로스는 지적했다. 인도인들은 계급 내에서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는 한편 다른 계급과는 서로 다른 인간으로서 종속관계를 이루어 공존하기를 택했다는 것이다.

석이 책을 들고 있던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것처럼 떨고 있었다.

소연아.

석이 내게 물었다. 그동안의 남자친구와는 어떻게 헤어졌느냐고 말이다. 석은 신기루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뿌연 시선으로 내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먼저 이별을 통보한 적이 없었다.

석에게 대답했다. 헤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말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난 뒤에 근처 대학교 캠퍼스의 호숫가 벤치에 앉아 ‘슬픈 열대’를 꺼내 무릎 위에 펼쳐놓고는 날이 질 때까지 젊은 남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오곤 한다는 걸.



윗방 아이는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없다.

어느 날부터 록 음악이 천장에서 울려댔다. 창가에 서서 벽을 바라보다 보면 담뱃재가 눈앞을 지나 떨어졌다. 가끔 나는 홀로 남겨져 욕을 하던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가 지금 지내고 있을 그 방은 방음이 잘 될까. 아니라면, 욕을 조용히 들어줄 이웃을 만났을까.

내가 사는 화양동 구역의 재건축 계획은 지원금 문제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창가에서 내가 마주보곤 하는, 금이 가고 있는 벽이 보수될 일은 또 한참 미루어진 셈이다. 물류센터 계약만료가 한 달 뒤다. 정규직을 꺼려하는 회사의 방침대로 나는 한 달을 쉴 것이다. 한 달 뒤에도 연락이 없다면 새 직장을 찾아야 할 테고 어쩌면 다른 동네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 훗날에 관하여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나는 얼마든지 비슷한 직장과 비슷한 동네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지만 긴 시간, 어쩌면 생각보다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 옛날에 들어섰던 서울 도처의 붉은 벽돌집들이 낡고 금이 가 일거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당혹스러워할까. 부끄러워할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깔려 죽을까. 아니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바깥의 사람을 마주 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 일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나는 전 남자친구의 이메일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신문사에 제보할 내용을 일러주었다. 내가 그랬다는 걸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야 되새겼다.

그날 출근한 사이에 내 앞으로 서류봉투가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의 신상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직접 두고 간듯했다. 석은 언제나 그렇다시피 자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두툼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소설이었다.

제목은 씬. 첫 문장은 이러했다.

다들 씬이라고 불렀다.

누구도 아닌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책을 읽게 되고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한 때부터 화양동에서의 이야기까지가 소설 형식으로 소상히 적혀 있었다. 나는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게 나야? 내가 그렇단 말이야? 다 읽고 나자 소설이 현재의 시점에서 마무리되었듯이 지금의 내게도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어느 새 울고 있었다.

미지의 꿈속을 뒤척이는 석을 내려다보면서, 화양동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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