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이언스리뷰] 외계행성의 기상학

관련이슈 사이언스 리뷰

입력 : 2015-12-09 22:20:49 수정 : 2015-12-10 02:27: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나트륨·광파가 행성대기 신비 풀어
지구형 행성 생명체 신호 잡아낼까
차량 정체로 고속도로 터널 속에 갇혀 버린 여행길, 터널 속 공간을 채우던 조명등의 은은한 황색 빛 속으로 갑자기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여느 때처럼 나를 스쳐지나가며 높은 톤에서 낮은 톤으로 변했다. 그 순간 얼마 전 읽었던 천체물리학 저널에 실린 논문 한 편이 떠올랐다. 논문의 내용은 터널등의 황색과 구급차의 소리 변화에 관한 물리학이 외계행성의 대기를 조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현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나트륨등이라 불리는 터널등은 방전관 내 함유된 나트륨(소금을 구성하는 원소 중 하나)이 에너지를 받아 들뜨며 내는 고유한 황색 빛을 이용한다. 원소마다 방출하는 색이 달라서 원소들의 특유한 발광색은 이들을 구분하는 ‘지문’으로 이용된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달궈진 나트륨이 황색을 내는 반면 차가운 나트륨 기체는 같은 색깔의 빛을 흡수할 수 있다. 태양 대기에 존재하는 나트륨 원소는 태양 스펙트럼의 황색 부분에 검은 두 줄의 흡수선을 만든다. 바로 나트륨이 내는 발광색과 동일한 위치에서 말이다.

구급차의 소리 변화는 흔히 도플러 효과라 불리는 파동 현상과 관계된다. 구급차가 다가오면 사이렌 소리가 만드는 공기 밀도의 주기적 변화가 압축되며 높은 톤의 소리로 변한다. 반면 차가 멀어지면 밀도 주기의 간격이 벌어지며 낮은 톤의 소리가 된다. 이러한 도플러 효과는 빛과 같은 전자기 파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트륨등이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나트륨 원소가 방출하는 노란 빛의 파장이 짧아지며 청색 쪽으로 치우치게 되고(청색편이) 반대로 우리와 나트륨등의 거리가 멀어지면 빛은 파장이 긴 빨간색으로 치우치게 된다(적색편이). 이를 이용해 광원과 관찰자 사이의 상대속도를 정밀히 측정할 수 있다.

이제 무대를 터널에서 남반구 여우자리 방향을 따라 63광년 떨어진 한 별로 옮겨보자. 그곳에는 태양-수성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약 이틀 만에 한 번씩 모성을 돌고 있는 목성형 행성 ‘HD 189733b’가 있다. 2005년에 발견된 이 행성은 높은 일조량과 두꺼운 대기층으로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이 행성의 대기층을 통과해 지구로 오는 별빛에는 대기를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의 지문, 즉 흡수선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물을 포함한 다양한 성분이 확인됐지만, 이 행성의 기상현상을 밝히는 데 공을 세운 원소는 바로 나트륨이다.

최근 영국 워릭대학교의 연구팀은 칠레에 위치한 유럽 남부천문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측정된 이 행성의 나트륨 흡수선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후 행성 표면에 엄청난 속도의 동풍이 불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동풍이 불면 행성 대기의 서쪽 껍질에서는 지구를 향하는 바람이 불게 돼 나트륨의 흡수선이 청색편이를 보이는 반면 반대로 바람이 부는 동쪽 끝 대기층에서는 적색편이가 관측될 것이다.

행성이 모성 앞을 지나가는 동안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도플러 효과를 분석한 이들의 계산에 의하면 풍속은 무려 시속 8600㎞ 정도에 달했다. 마하 7에 해당하는 엄청난 속도다. 높은 일조량에다 조석 고정 현상으로 밤낮이 고정돼 발생하는 막대한 온도 차이가 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상 현상을 만드는 것이다.

1990년대 최초로 외계행성이 발견된 이래 그동안 수천 개의 외계행성이 확인됐다. 그간의 연구가 외계행성의 발견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외계행성의 기상과 같은 구체적 특징을 정밀하게 파악해 나가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모성에 근접한 목성형 행성처럼 측정이 용이한 행성이 주 연구대상이다. 언제쯤 돼야 골드록스 지역에 위치한 지구형 행성의 대기를 엿볼 수 있을까. 그런 외계행성의 표면으로부터 엽록소와 같은 생명체의 지표를 알려주는 신호를 확인할 날이 올까. 꼬리를 무는 즐거운 상상은 터널 속 정체가 풀리며 끝났다. 나트륨등의 아늑한 황색 불빛을 벗어나 다시 여행을 시작할 때이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