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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아이들에게 돈과 시장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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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01 22:16:53 수정 : 2015-12-01 22: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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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200조 시대… 빚 수렁에 파탄 지경… 청소년 금융교육은 선택 아닌 필수
빚 무서운 줄 알아야… 근면과 절제 몸에 배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불이행자 10명 중 6명이 중산층·고소득층이다.’

세계일보는 2014년 신년탐사기획 ‘가계부채 1000조원시대-벼랑 끝 가계, 이대론 안 된다’ 시리즈에서 이 사실을 전하며 중산층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526명을 분석한 결과였다. 그때 기자는 이들의 개인회생신청 자료를 들춰보다 기구한 사연에 눈물 짓곤 했다. 그들은 마치 불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듯했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어렵사리 창업한 일들은 얼마 가지 못했다. ‘대박’을 꿈꾸며 결행했던 주식과 부동산투자는 기어코 ‘쪽박’이 나기 일쑤였다. 빚보증과 사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속출했고 가족의 병치레, 이혼과 같은 재앙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머피의 법칙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가혹한 현실이었다. 

주춘렬 경제부장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파산에 이르는 경로는 같았다. 그들은 창업과 투자 위험과 실패에 따른 대가에 둔감했고 빚의 무서움에 눈감았다. 누구도 예외없이 살인적인 고금리에 시달리다 결국 빚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학력이 높든 낮든, 나이가 많든 적든, 직업이 좋든 나쁘든 예외가 없었다.

이로부터 약 2년이 흐른 지금 금융약자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본지는 지난달 초 ‘금융취약층이 위험하다’ 시리즈를 게재하면서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가계부채는 올 연말 1200조원대로 내달리고 있다. 채무불이행자와 개인파산·회생 등 금융취약계층은 2013년 말 459만9700명에서 2014년 말 470만1300명으로 불어났다. 올해도 사상최대치를 경신할 기세다.

그동안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졌지만 금융약자는 고금리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는 빚 탕감 등 서민금융지원에 공을 들였지만 허사였다. 빚 수렁에 빠진 이들은 “곧 갚게 될 줄 알았다” “빚이 그렇게 무섭게 불어날 줄 몰랐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빚의 굴레에서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의 경험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성싶다. 본지의 해외취재 결과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금융강국에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경제·금융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정부와 민간이 똘똘 뭉쳐 아이들에게 부채의 위험성과 절약의 미덕, 자산증식의 기법을 꼼꼼히 가르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작금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금융교육은 황무지나 다름없다. 언제부터 누가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경제·금융교육관련예산도 다 합쳐 38억원에 불과하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예산을 통한 경제·금융교육은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면서 “중·고교 정규과정에서 금융교육을 가르치고 시험도 치르게 하는 것 이외에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과거 기획재정부는 금융분야를 정규교육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교육부로부터 무안만 당했다고 한다. 교육부와 일부 학계에서는 여전히 상업이나 투자, 돈벌이를 천시하고 멸시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과연 돈과 시장을 가르치는 일이 무시돼도 되는 걸까. 기성세대가 시대착오적 관념과 기득권에 사로잡혀 아이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금융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약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오각성하길 권고한다.

‘우리 아이에게 금융교육을 허하라. 돈과 시장에 관한 그들의 알권리와 욕구를 충족하게 하라.’

소설가 김훈은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라고 단언했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김훈산문 ‘라면을 끓이며’ 178∼179쪽)

주춘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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