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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난 지 20여년 만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후줄근한 중년이 돼 다시 엄마 곁으로 모여들었다.”

영화 ‘고령화 가족’에 나오는 둘째아들의 대사다. 삼류 건달인 장남, 영화로 인생을 말아먹은 둘째, 두번 이혼하고 세 번째 이혼하겠다는 딸이 한 공간에 빌붙어 산다. “무슨 웬수가 져서 아직까지 늙은 어미 등골을 뽑아먹고 사냐”는 엄마의 하소연이 실감나는 군상들이다. 영화 ‘관능의 법칙’에서 싱글맘으로 분한 조민수는 “집 나가면 돈만 든다”며 엄마 주변을 맴도는 딸에게 “도대체 이놈의 육아는 몇 살까지 키워야 끝나는 거냐”고 소리친다. 독립을 못하는 청춘이나 다시 ‘돌아온’ 중년이나 엄마에겐 반갑지 않은 존재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에 얹혀 지내는 청춘을 ‘캥거루족’이라 부른다. 주머니에 새끼를 품고 키우는 캥거루처럼 경제적으로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세대다. ‘고령화 가족’의 삼남매도 엄마 공간에 빌붙어 사니 ‘늙은 캥거루족’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난, 청년실업 문제가 부상한 2000년대 초반 탄생한 조어다. 프랑스에선 아들을 독립시키려는 부모와 계속 얹혀 살려는 아들의 갈등을 그린 코믹영화 ‘탕기’(Tanguy)가 인기를 끌었는데 실화가 바탕이 됐다. 실제 31세 된 아들을 집에서 내보내려고 어머니가 대문 자물쇠를 바꿨는데 아들이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고 한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널드 토인비는 “미래의 이상적인 가족사회는 3대가 모여 사는 한국에 있다”며 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한 가지로 한국 가족제도를 꼽았다고 한다. 토인비가 극찬한 건 효에 뿌리를 둔 부모 봉양의 미덕이었다. 지금은 부모가 불효한 자녀에 상속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는 세상이니 많이 달라졌다. 부모를 모시는 게 자식의 도리라는 통념은 옅어진 반면 부모의 자녀 ‘양육’기간은 늘어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사회조사’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녀와 함께 사는 60대 이상 인구 중 34.2%가 ‘자녀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 같이 산다고 답했다. 본인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라는 응답은 29.3%였다.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가정보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가정이 더 많은 셈이다. ‘장기 양육’의 애환을 토로하는 중년 네티즌의 반응에 “집값 보면 도저히 독립 못한다”는 청춘의 아우성이 크다. 부모, 자식을 ‘웬수’로 만드는 시대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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