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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독자를 한 방에… 장편작가의 삶은 호랑이”

입력 : 2015-11-23 22:55:52 수정 : 2015-11-23 23: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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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조선 마술사’ 펴낸 소설가 김탁환 “이 소설을 쓰기 전 김탁환과 쓴 후 김탁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골방의 몽상과 현장의 생생함을 아우르는 ‘취재형 작가’로 불혹의 10년을 활활 태우겠다. 아직도 내겐 젖은 장작이 많다.”

소설가 김탁환(47)이 장편소설 ‘나, 황진이’ 후기에 붙인 말이다. 삼십대 벽두에 소설가 출사표를 던진 이래 일년에 두세 편씩 장편소설을 펴내며 초인적인 필력을 과시한 그가 ‘아직도 내겐 젖은 장작이 많다’고 투지를 불태운 글이다. 과연 그의 화력은 대단했다. 사십대에 접어들어 그가 마음먹고 쓴 ‘힘 센’ 장편만 세 권이고 여타 덧붙인 소설들은 여럿이다. 최근에는 영화와 소설의 결합을 표방하는 ‘무블(Movie+Novel=Movel)’ 시리즈로 ‘조선 마술사’(민음사)를 추가했는데, 등단 20년 남짓에 51권째 장편소설이다. 놀라운 생산력이다.

“영화로 팔아먹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직업이 있습니다. 소설가 김탁환과 영화기획자 김탁환입니다. 소설을 잘 쓰면 영화 기획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입니다. 최소한 5~6년 동안 영화 기획피디를 하면서 밑바닥에서 배웠습니다. ‘나, 황진이’ 같은 소설은 여성 1인칭 고백체로 내면을 옮긴 것이어서 절대 영상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최인호의 ‘황진이’를 비롯한 많은 버전이 있는데 주제가 확실하고 같은 인물이라도 새로운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김탁환의 말을 들어보면 ‘조선 마술사’는 소설보다는 영화 기획에 가깝다. 애초 ‘무블’이라는 작명으로 드러내놓고 시작한 작업이다. 다음달 유승호 주연으로 개봉된다. ‘열하일기’의 ‘환희기’에 박지원이 묘사한 청나라 저자 거리 요술사들의 이야기를 실마리로 조선 마술사 ‘환희’가 ‘청명’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조선 땅을 넘어서 서역을 건너 유럽까지 치닫는 활달한 상상력을 펼친다.

이 소설은 고향 친구 이원태와 공동 작업했다. MBC 피디 출신으로 온갖 진기한 이야기를 모아 픽션으로 구성한 ‘서프라이즈’ 시리즈를 100회가량 만들었던 이원태 감독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김탁환은 말했다. 그 친구와 싱가포르 여행을 갔다가 밤새 구상해 영화와 소설로 나온 첫 번째 결실이 고종황제와 커피 이야기 ‘노서아 가비’였다.

서울 목동에 ‘원태’와 ‘탁환’이 함께하는 ‘원탁’이라는 기획사무실을 차렸다. 소설 쓰기는 파주 작업실에서 한다. 파주에 가면 소설가요, 목동에 오면 영화기획자로 사는 것이 이 즈음 그의 패턴이다. 김탁환의 소설들은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터였다.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황진이’를 비롯해 백탑파 시리즈 중 하나로 흥행에도 성공한 ‘열녀문의 비밀’들이 그것이다.

“장편 작가의 삶은 호랑이와 비슷합니다. 사자와 달리 혼자 다니는 점이 첫 번째요, 반경 200~300㎞를 돌며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다니는 점이 그 두 번째이며, 사냥할 때는 열흘씩이나 굶어가며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도 존재를 감추는 점이 세 번째 그것이고, 마지막에는 붕 떠올라 단번에 앞발로 목을 쳐서 한 방에 끝낸다는 점입니다. 장편 작가도 문장으로 한 방에 가둬 가지고 독자들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등단 20년 남짓한 기간에 51권째 장편소설 ‘조선 마술사’를 펴낸 소설가 김탁환. 그는 “영화를 업고 문학성이 없는 소설을 대충 쓸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그걸 깨기 위해 더 완벽한 문장과 상상력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개마고원을 누비고 백두산을 휘달리던 흰머리 호랑이와 개마고원 명포수 이야기 ‘밀림무정’의 작가답게 그는 글쓰기를 호랑이의 삶으로 말했다.

김탁환은 창원에서 나서 서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거쳐 평론가로 살다가 해군사관학교 교수 요원으로 복무했다. 해사 시절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를 펴내며 소설가로 데뷔했고 ‘불멸의 이순신’ 초고 4000매를 써서 제대한 후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40대에 접어들어서는 조선의 혁명가를 다룬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다룬 ‘뱅크’,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다룬 ‘밀림무정’에 필력을 집중했다. 괴력에 가까운 글쓰기 노동력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

“외할아버지가 백 그루 넘는 앵두나무를 키웠습니다. 막내 외삼촌은 앵두나무 밑에서 쉼없이 소설을 썼습니다. 삼촌은 제가 다섯 살 때도 앵두나무 밑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고, 열다섯 살 때도 쓰고 있었으며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할 때도 여전히 쓰고 있었습니다. 5년 전 암에 걸린 삼촌이 드디어 40년 동안 써온 소설을 읽어보라고 건네더군요. 등단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출판해 드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삼촌은 웃었고, 지난해 돌아가셨습니다. 내내 앵두나무 밑에서 글을 쓰다 간 삼촌은 나무 밑에 묻혔습니다. 평생 쓰면서 인생을 성찰하고 자신을 단련시키다 간 겁니다. 그 삼촌이야말로 제 문학의 아버지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소설을 쓰는 삼촌을 보아온 김탁환은 자연스럽게 문학의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었다. 백일장에 나가 쓴 글들을 삼촌에게 보여주면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곤 했다. 자전적인 소설집 ‘진해 벚꽃’을 보면 김탁환의 성장기가 그려진다. 창원에서 마산으로 전학 나오던 열세 살 봄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축구선수, 사냥꾼, 마라토너가 꿈이었던 소년은 이후 감히 그 멋진 희망들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책 속에 파고들었다. 소년이 대리만족한 책 속의 세상은 끊임없이 광활한 세계를 꿈꾸는 ‘모험을 떠나지 않는 삶은 삶도 아닌’ 삶이었다.

“지금까지 써 온 소설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별로 없습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변화에 대한 관심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크게 요동을 치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이해가 되는 인물은 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안 되면 문장으로 그 사람을 살아보면서 알아나가는 거지요.”

김탁환에게 슬럼프는 딱 한 번 있었다. 2003년 오페라 이순신 대본을 쓴 뒤 하루 두 문장도 나오지 않는 시간이 두어달 계속되어 미칠 지경까지 갔다. 하릴없이 러시아 오페라 공연을 따라갔는데 그곳에서 한 여기자의 조언을 얻어 수염을 깎지 않았더니 거짓말처럼 글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 김탁환 마스크의 상징은 코 밑과 턱을 감싸는 검은 수염으로 굳어졌다. 김탁환은 지난해 시작하려다 세월호 때문에 대신 ‘목격자들’을 썼지만 소설가로서 가장 써보고 싶은 소설은 ‘사랑 같은 혁명, 혁명 같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은 심장을 바꾸는 일”인데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어 ‘판타지’일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랑을 믿는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수만가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이야기에 굶주리고 열광한다. 김탁환은 “근본적으로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살기 때문에 다른 인생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야기꾼 김탁환, 그는 2006년 펴낸 소설집 후기에 “10년 후에도 작업실 문앞에 ‘지금 내 인생의 대표작을 집필 중이니 방해 말 것’이라는 오만한 문장이 붙어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김탁환은 여전히 오만하게 대표작을 집필하는 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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