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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좁은 골목길서 피어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

관련이슈 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

입력 : 2015-11-20 10:00:00 수정 : 2015-11-20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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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10〉 정감 어린 도시 ‘트리니다드’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는 작지만 예쁘다.
쿠바 트리니다드(Trinidad)에서는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놀거리나 볼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한 끼 식사는 식당에서 두 시간 동안 하게 되고, 물 한 통을 사려면 상점 서너 군데는 들러야 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다. 
안겨 있는 뉴트리아 모습이 마치 애완동물 같다.

트리니다드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왔을 때는 물자 유통이 잘됐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은 되지만, 이번에는 물건 사기가 힘들다. 그래도 식당마다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여행자도 많아서 심심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또한 혼자서 여행할 때보다 언니들과 여행하면 훨씬 할 일이 많아진다. 셋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만 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심심할 틈이 없다.
산초네 뒷마당에서 기르는 돼지 두 마리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트리니다드에서 친해진 우리 친구 ‘산초’는 기찻길에 길게 늘어선 집에 살고 있다. 산초네 집과 이웃집도 놀러 다니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산초네 뒷마당에는 작은 돼지 두 마리가 살고 있다. 내년 파티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목욕까지 시켜줘서 깨끗한 분홍색 돼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내년 파티에 우리 세 자매를 초대하고 싶어 했다. 이런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도 그 약속이 이뤄지길 바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산초의 어린 아들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급한 볼일이 있는 얼굴로 뛰어 들어온 아들에게 우리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한 명씩 인사를 하고, 우리 소개까지 마친 후에 급한 볼일을 보러 갔다. 우리 모두 한바탕 웃고, 뒷마당으로 가기 위해서 집 안 복도를 지나갈 때, 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천으로 가려진 화장실 안이 훤히 보였다. 작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꼬마랑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외국인과 볼일 보면서 눈까지 마주친 그 꼬마가 기억하게 될 이 순간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 꼬마 입장에서는 웃을 일이 아니겠지만, 꼬마 모습이 귀여웠다.

일반적인 가정집은 집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을 테라스가 있고, 집 안을 지나가면 뒤뜰이 있다. 뒤뜰에는 나무를 심기도 하고, 동물을 기르기도 하고, 빨래를 말리기도 한다. 대부분 구조가 이런 형식이며, 산초네가 전형적인 쿠바 집 구조다. 산초 아내는 동네 모든 일거리를 도맡아 오는 산초가 싫다면서도 내심 자랑을 했다. 산초는 트리니다드 어느 곳을 가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동네 일거리를 집 안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그러니 외국인 친구인 우리도 집으로 데려가서 닭도 잡아주고 했을 것이다.

산초는 옆집에도 우리를 데려가서 인사를 시켜줬다. 사실 인사를 시키기 위해서 데려간 것은 아니고, 작은 언니가 옆집을 기웃거리다 그 집 사람이랑 말을 하게 돼서 연결됐다. 그 집은 뒷마당에서 설치류 뉴트리아를 기르고 있었다. 뉴트리아를 기르는 이유는 식용이다.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다. 신기해하는 우리에게 직접 꺼내 보여주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서 팔에 안았다. 작은 손으로 먹이를 먹는 모습이 다람쥐와 비슷하고, 사람에게 안겨 있는 모습이 애완동물 같다.

그렇게 소중히 안아서 보여준 뉴트리아는 가족이 다 모이는 날에 바비큐를 해 먹을 거라고 말했다. 육식을 먹을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서는 이렇게 동물을 키워서 잡아먹는다. 
산초가 모는 자전거 택시를 타면 신나게 달릴 수 있다.

산초네 동네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산초가 모는 자전거 택시인 ‘비시탁시(Bici Taxi)’를 타고 간다. 산초는 모든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장난을 치면서 돌아다닌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걸어가는 할머니에게는 몰래 다가가서 깜짝 놀라게 한 후에 서로 인사를 한다. 우리에게 ‘린다(예쁜 여자)’라고 외치는 친구들에게는 ‘치코 페오’(chico feo, 못생긴 소년)라고 답해줬다. 그 말이 재밌어서 우리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치코 페오’라고 같이 장난을 쳤다. 그러면 다 같이 웃게 되고, 우리가 지나가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거리가 됐다.
트리니다드 골목길은 정감 가는 곳이다.

산초랑 같이 다니면 재미있는 일만 생긴다. 다음 날은 산초랑 트리니다드 시장을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아침 일찍 나섰다. 쿠바 느낌이 물씬 나는 밀짚모자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 집이 있었다.

관광 상품 파는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게 팔았다. 관광객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라, 일반 쿠바인들을 위해 2대째 만들어서 파는 집이다. 집 안에서 만드는 모습도 보여줬다. 대를 하나하나 엮어서 정성 가득히 만든 모자를 하나씩 사서 썼다. 그 모자를 쓰고 신나게 또 동네를 산초와 함께 누볐다.
동네 아저씨는 아침에 물고기 두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우리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곳이다. 집 문을 열면 이웃집 사람과 인사를 하고, 좁은 골목길 안에서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벌써 우리 숙소 골목길에서는 우리 세 자매를 알고 인사도 나눈다. 
트리니다드 골목길에서는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한 발 정도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선 느낌이지만,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 가까이하지는 않는다. 또한, 서로 삶을 살았던 자매끼리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끼리도 더 가까워졌다. 사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져도 형제자매는 어렸을 때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다.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때로는 오래된 친구로서 우리는 트리니다드에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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