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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인간… 얽히고 어우러지고… 19일부터 삼성미술관 리움서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자신의 저서 ‘영원의 건축’에서 가장 바람직한 건축물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명의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1965년 뉴욕현대미술관의 ‘건축가 없는 건축’전을 기획한 버나드 루도프스키도 세계 토속건축의 재발견을 익명성에서 찾았다. 두 사람은 현대건축의 화두인 환경과 보존, 인문학적 가치를 되돌아보면서 무명에 주목했다. 무명의 특성을 영원함과 소박미로 압축했다. 지극히 평범해서 우리 삶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래서 약간은 서글프다고 했다. 다소 난해한 얘기 같지만 19일부터 내년 2월6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은 이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이 시대에 왜 한국 전통건축에 주목해야 하는지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등 사진작가 6명의 사진과 영상감독 박종우의 영상 등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가치가 높은 전통건축 10곳이 시적인 영상과 사진, 모형 등으로 재구성됐다.

7개 건축물은 외형과 더불어 내부를 투사해 볼 수 있는 3D 스캔 영상이 상영된다. 금동대탑을 9층 탑으로 복원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3D 영상도 눈길을 끈다. 불국사 전시 코너에서는 석굴암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도 소개된다. 지형의 특성을 이용한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입체적으로 비교해 보여주는 가람배치도도 전시된다. 

창덕궁에서 촬영한 배병우의 ‘영화당에서 바라본 부용지 설경’.
경복궁 전시 코너의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은 19세기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200분의 1 축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서울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훼손과 복구를 거치며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각 건축물과 관련된 옛 그림과 유물, 고지도 등 고미술품도 다양하게 전시해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 해준다.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대여한 ‘숙천제아도’는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간 부임했던 중앙 및 지방 관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으로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리움 소장품인 조선 후불탱화 ‘아미타설법도’도 복원 작업을 거쳐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이외에도 창경궁을 그린 궁궐도인 ‘동궐도’(국보 249호), 18세기 서대문 밖 경기감영과 주변의 모습을 12폭의 병풍에 사실적으로 그려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경기감영도’, 김홍도의 ‘규장각도’, 한성도와 동국대지도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미술품을 볼 수 있다.

동궐도나 경기감영도 같은 고서화에는 리움의 디지털 확대 기술인 DID를 적용해 관람객이 화면을 터치하면서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평일 20세 미만 청소년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교과서와 연계한 워크북도 제공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 리움 부관장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 해 온 한국전통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건축”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건축문화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담은 박종우의 ‘장엄한 고요’.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 사회질서에 순응하며 지속가능한 전통을 말하는 서구건축학자들에게 한국건축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현대건축의 대안으로 서구건축계가 주목해 온 곳은 주로 일본과 중국이었다. 반면에 한국건축은 제대로 소개할 콘텐츠가 없었다. 40년 전 사진작가 임응식의 ‘한국의 고건축’ 사진집 시리즈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50권을 계획했지만 일곱 권으로 중단됐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삼성미술관 리움 홍라희 관장의 뜻에 따라 다음달 사진집 ‘땅의 깨달음-한국건축’ 10권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사진작가 6인이 찍은 사진들이 수록된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정확함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은 무아(無我)”라며 “어떤 건물이 활기가 없고 공허하다면 그 배후에는 항상 주동자가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건물에 그것을 지은 사람의 의지가 가득 있어 건물의 본성이 드러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국건축의 무명의 영원성을 이해시켜주는 말이기도 하다. 

산세와 지붕선이 녹아들 듯 어우러지고 있는 주명덕의 ‘해인사’.
전시에서 건축물의 구조와 지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다. 천기와 지기가 움직이고 변화하는 통로를 장악하면 거대한 자연의 기를 감응할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 그 장악의 도구가 건축이다. 좋은 터에 지은 집은 자연의 생기를 담는 곳간이 되고, 인간은 건축물에 저장된 생기를 받아 몸의 기로 바꾸면 된다.

전시연계 강연도 들을 만하다. 28일 오후 2시 전시연계 강연회(이준, 서울대 전봉희 교수, 배병우)를 비롯해 12월 4일 오후 3시엔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총장의 ‘대지에 집합된 사유들’ 특강이 있다.

이밖에도 한국의 자연과 건축문화(유홍준·12월11일 오후 3시), 한양도성 자연과 자율의 질서(이상구 경기대 교수·12월17일 오후 3시), 독락당과 빌라 로툰다(건축가 승효상·내년 1월13일 오후 3시), 미술사와 건축사의 교차(서울시립대 이강근 교수·내년 1월20일 오후 3시) 특강이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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