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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존재의 쓸쓸함, 몽상을 통해 위로받다

입력 : 2015-11-12 22:31:14 수정 : 2015-11-13 08: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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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선 신작 ‘네가 누구인지 말해’

“라이카는 죽은 채로 자신을 태운 우주선과 함께 궤도를 따라 돌다가 지구 대기권에서 폭발했대요. 처음 몇 시간은 절대 고독 속에서 외로움과 싸웠을 거예요. 그러다 종래엔 고통 속에 죽어간 거죠.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기견 시절에도 외롭긴 마찬가지였겠지만 말이죠. 제가 그래요. 우주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우주개와 같은 심정이죠. 그래서 라이카가 제 분신처럼 느껴져요.”

옛 소련은 인공위성 스푸트니코 2호에 개 한 마리를 태워 우주로 발사했다. 그 개는 검은 허공을 홀로 유영하다가 죽었다. 작가 신중선은 최근 펴낸 장편소설  ‘네가 누구인지 말해’(문이당)에서 그 우주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소년은 보육원 출신이다. 여섯 살 때 양자로 나갔는데 양부의 폭력 때문에 가출해 떠돌다가 다시 듬직한 아빠를 만났다. 그 아빠는 새를 관찰하는 탐조가였고 행복했지만 첫 양부의 등장으로 그마저 산산조각났다. 소년은 죽고 죽인 그 아빠들을 마당가에 묻고 홀로 숲속으로 헤맨다.

페이라는 여자, 그네는 쌍둥이 여동생이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믿었다. 소년은 그 아이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착각했을 뿐이다. 소년은 자신이 호사스런 레이스 장식이 달린 바구니에 버려졌으니, 귀한 집 아들일 거라고 또다른 여인 L에게 들었다. 그마저 거짓이었다. 탐정 B에게 우주개는 우주 어딘가에서 수돗물이 똑똑또독, 누수되는 소리를 빌려 모르스 부호로 타전한다.

“여보세요, 도와주세요. 내 말 들려요? 집에 가고 싶어요. 나는 다른 행성에 있어요. 나는 우주개. 그를 도와주세요.”

만추에 어울리는 쓸쓸한 소설이다. 우주개를 위한 서사시 같기도 하다. 작가는 왜 이리 가련한 소년을 등장시켜 비밀의 숲에서 “나뭇잎에 덮여” 스스로 죽어가도록 했을까. 이 소년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1987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신중선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실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쓰기 시작했다”면서 “소년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먼 우주에서 영문도 모르고 폭발해서 사라져 버린 우주개일 수도 있는 것인데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이렇듯 궤도를 따라 돌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는 건 아닐까”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지금 이곳의 삶이 늘 허방인 듯한 이들이라면 이 소설에 충분히 공감할 터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듯한, 신비로운, 다음 생을 기대하며 전생의 기억들을 몽중에 떠올리는 환상은 기실 현생을 사는 모두의 진통제일 것이다. 어쩌랴, 아무리 냉철하게 눈을 부릅떠도 이 생은 위로가 필요한 것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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