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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오매~ 내 마음도 물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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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06 06:00:00 수정 : 2015-11-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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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깊어가는 전남 구례
지리산 주능선의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 피아골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 피아골 단풍은 흔히 ‘삼홍’으로 불린다. 단풍에 온산이 붉어 ‘산홍’, 그 붉은빛이 물에 비치어 ‘수홍’, 그 물 속 붉은 빛이 사람 얼굴을 붉게 해 ‘인홍’이다.
최근 전남 구례를 다녀왔다. 지리산을 품고 섬진강을 벗하고 있는 남도의 조용한 고장이다. 이곳이 고향인 경제신문의 한 부장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해 평소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구례에 진입하자 들판 곳곳에서는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지리산 주변 둘레길 숲들은 남도의 깊어가는 가을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화엄나들목을 빠져나와 국도를 따라 달려 도착한 곳이 마산면 화엄사로 539번지 화엄사다. 지리산 사찰 중 가장 큰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이곳 서오층석탑에서 최근 부처의 진신사리가 발견됐다.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 4점, 보물 8점, 사적 1점, 명승 1점, 천연기념물 2점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화엄계곡을 비롯한 빼어난 자연 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져 천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평일인데도 전세버스를 이용해 구경온 방문객으로 사찰 내 곳곳이 북적인다. 경내를 둘러본 뒤 입구에서 문화관광해설사 곽영숙씨를 만났다. 곽씨는 절 입구에 새롭게 조성된 산책길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지리산 치유탐방로’다. 
곽씨의 안내로 화엄사 입구에서 연기암까지 2km 구간인 제1탐방로를 걸었다. 저질 체력이라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코끝은 상쾌한 게 금세 기분은 좋아졌다. 이 코스 말고도 화암사 입구에서 금정암∼내원암∼미타암∼청계암∼연기암에 이르는 3.9km 구간도 있다. 

구례에서 단풍하면 단연 피아골이다.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의 등 넘어 섬진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계곡을 말한다. 많은 이들이 6·25전쟁 직후 ‘피아골’이라는 영화가 나온 탓에 흔히 전쟁 때 이곳에서 동족끼리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옛날에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이곳 선경을 찾은 선객들이 고대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피밭골로 부르게 됐는데,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라고 한다. 사계절 절경이지만 가을철 단풍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매년 단풍축제도 열린다. 

오산과 사성암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오산은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해발 531m의 호젓한 산으로 자라 모양을 하고 있다.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데 비경이 많아 가족이나 단체 소풍지로 인기가 있다. 정상에 오르니 굽이치는 섬진강과 구례읍, 지리산 연봉들이 보인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처음으로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암벽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조각돼 있어 이를 마애여래입상이 한다. 원래는 오산암으로 불렸으나 이곳에서 원효, 도선, 진각, 의상 4명의 성인이 수도했다고 해서 사성암이라 부른다. 
오산 정상에 있는 암자로,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건립한 사성암.

이곳에 가려면 사성암 진입로 입구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가 올라갈 수 없어서다. 번거롭다는 생각도 있지만 일행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정담을 나누며 오르는 과정도 여행의 재미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면 버스를 타지 않고 등산로를 따라 40분가량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저녁 무렵 곽씨가 안내한 곳이 토지면에 있는 운조루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운조루는 1776년(영조 52)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집으로 조선 후기 귀족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이다. ‘-’자형 행랑채, ’ㅗ’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잘 보존돼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의 뒤주가 있는 운조루.
운조루는 도연명의 시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의 “구름은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지친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는 구절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운조루 입구에 도착한 곽씨가 직접 담근 간장과 무농약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를 파는 할머니를 보고 “어머님!’이라 불러 놀랐다. 알고 보니 곽씨는 류씨 종가의 10대 며느리였고, 할머니는 운조루 주인인 9대 며느리 이길순 여사였다. 
곽씨에 따르면 2002년 봄에 연애로 이씨의 셋째아들 류정수씨를 만나 1996년 결혼해 진주에서 살던 중 남편이 큰 집을 혼자 힘겹게 돌보는 어머니를 놔둘 수 없다고 해서 본가에 들어와 살게 됐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종가를 지키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슈퍼우먼’이었다. 얼마전까지 운조루에 같이 살다가 지금은 바로 옆 한옥으로 이사해 한옥스테이를 하고 있다.

운조루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요즘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의 나눔철학이 깃들어 있어서다. 쌀 3가마가 들어가는 200여년 된 원통형 뒤주가 그 증거물이다. 뒤주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씌어있는데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배고픈 사람은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했다는 것.

기자는 구례군청 근처에 숙소를 정했지만 마음을 바꿔 이곳에 묵기로 했다. ‘한옥스테이’다. 그날 밤 오랜만에 지리산에 걸린 달 구경도 했다.

구례=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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