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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갑작스런 작별… 성장의 한마디 넘다

입력 : 2015-10-30 20:07:22 수정 : 2015-10-30 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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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빈 지음/ 김정은 그림/문학동네/1만1500원
여름이 반짝/김수빈 지음/ 김정은 그림/문학동네/1만1500원


“신기하지 않나, 내 숨이 하늘을 난다는 게.”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야?” “저 비눗방울 안에 든 숨 말이다, 내 숨. 하늘을 나는 것도 신기하고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 유하가 비눗방울을 불며 한 말에 린아는 코웃음쳤다. 줄 게 있으니 꼭 만나자는 부탁을 거절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유하가 떠나버렸다. 아빠의 죽음 이후, 생애 두 번째 장례식을 맞은 린아. 그런 린아를 유하가 위로하려고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미안함에 린아가 유하를 부른 것일까. 숨을 불어넣어야만 존재하는 ‘비눗방울’을 매개로, 세상을 떠난 유하와 세상에 남은 린아는 다시 만난다. 괜찮으냐고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내가 귀신인데 뭐가 무섭노 하며 왼쪽 뺨의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는 유하는 엊그제처럼 씩씩하다. 유하를 볼 수 있는 시간은 49일, 딱 7번. 쌀쌀맞던 린아는 이제 유하를 만나기 위해 그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색색의 수국이 흐드러진 언덕길을 결코 친해질 것 같지 않았던 사월이, 지호와 함께 숨 가쁘게 달린다.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잠깐 같은 반 친구였던 유하의 죽음을 계기로, 아이들이 불가항력의 경계를 건너 다시 만나고 제대로 작별하며 성장의 한마디를 넘어가는 이야기다. 어린이들은 이승과 저승을 넘어 어린이끼리 탄탄하게 연대한다.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해주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스스로 자라겠다’는 당당한 선언을 남기는 것이다. 두려움과 한숨 말고 보태 준 것이 없는 오늘날의 어른들은 이처럼 해맑고 용감한 작품을 읽을 자격이 없다. 아이들이 아픔으로부터 단단해지고 편견과 외로움으로부터 서로를 찾아내고 마침내 반짝이는 선물을 발견하는 순간들은, 타박타박 걸어가는 담담한 문장과 소중한 순간을 앨범처럼 담은 맑은 그림으로 재현되었다.

차가웠던 외동딸 린아와 감정에 솔직한 8남매집 넷째 딸 김사월, 짓궂은 이지호와 다정한 유하가 부드럽게 섞여가고, 마을을 쏘다니는 미친 소와 정 많은 할머니, 이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과 투명한 색채 안에 깃들어 우리의 마음을 볕드는 양지쪽으로 데려간다. 웅크린 마음을 풀어놓는다. 우리가 왜 동화를 읽어야만 하는지 답을 주는 책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용감했으며 누구나 어린이이거나 어린이였다. 그런 좋은 세계는 먼빛처럼 아스라이 떠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알고 보면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비눗방울처럼 많고, 책을 덮고 나면 마음에 하나씩 내려와 앉는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은 이렇게 연약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를 읽는다. 연약한 것들의 힘을 가슴에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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