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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안보이는 삶을 사는 ‘청춘의 자화상’

입력 : 2015-10-16 09:06:19 수정 : 2015-10-16 0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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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우수작 김의 ‘어느 철학과 …’ “형벌이다. 트랜스젠더의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때론 너무 힘들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장난기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남자를 만들어 놓고 여자의 살가죽을 입혔으니 말이다. 여자를 만들어 놓고 남자의 살가죽을 입혔으니 말이다. 인간이 스스로 그 살가죽을 벗으려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 정말 몰랐단 말인가.”

11회 세계문학상 우수작 김의(56·큰 사진)의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나무옆의자)은 트랜스젠더 엄마와 살아가는 철학과 자퇴생 이인우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돈은 벌어다주지만 더 이상 남편 역할은 힘들겠다고 선언한 지금의 ‘엄마’는 다섯 살 때 엄마와 이혼하기 전까지는 아빠였다. 아빠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속은 여자인 이 사회의 ‘소수자’였다.

세상의 편견과 소외 속에 당사자인 ‘엄마’도 살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그 아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가난한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1505호 ‘악마’ 같은 고삐리 일진은 인우를 시종 괴롭힌다. 보신탕집에 개를 손질해 넘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마에게 시달림을 받는 인우에게 도피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이른바 신이 정한 윤리를 어기고 남자에서 여자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본래의 모습인 여자를 되찾은 것뿐이다. 신이 엄마에게 운명이란 이름으로 잘못 입혀 놓은 남자의 옷을 벗은 것뿐이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서 그 옷을 벗은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세상의 끈질긴 악의와 편견은 그가 잡는 보신탕집 개의 처지를 환기시킨다. 악마는 그를 괴롭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엄마까지 넘보았다. 엄마는 참혹한 현실에서 사랑마저 여의치 않자 자살을 시도하지만 정작 같은 처지의 ‘이모’가 양화대교에서 투신해 ‘덜 슬픈 곳’으로 떠난다. 이 세상의 ‘악마’들을 설득해 공존하는 길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소설에서 그 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심사에 참여했던 문학평론가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은 “이 소설은 과연 ‘인간다운 삶’이 권리인지 아니면 의무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불편하게 질문한다”면서 “악무한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은 과연 자퇴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작가는 “소설을 쓰려면 절망감과 동시에 설렘을 느끼는데 아마도 그 설렘이 세상과 사람들 속에 파묻히고 섞여 있어도 언제나 나임을 확인시켜 주는 울림이 아닌가 싶다”면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면 희망을 만들고, 희망이 존재한다면 과연 희망다운 희망인지 한 번쯤 되짚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후기에 썼다. 그는 “소설이란 결국 희망 만들기”라고 믿는 쪽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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