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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대론 갈라파고스된다②]폐쇄적 기업문화

입력 : 2015-10-14 18:26:19 수정 : 2015-10-20 10: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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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간·부처간 협업 문화 없어…쓸데없는 비용·인력 낭비 초래
경직된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진정한 의미의 ‘소통’ 결여

[사례1]대기업 A는 중견 IT업체 B와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A는 자사의 상황, 시장 흐름 등에 대한 정보를 B에게 잘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모 서비스의 가격을 깎아야겠다”,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몇월말까지 준비해오라” 식으로 일방적인 통보만 할 뿐이었다.

B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기술을 개발한 후에도 A에게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항상 A에게 공개하기 전에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기업을 먼저 물색했다. 심지어 내부적으로 원가절감에 사용한 뒤 끝까지 공개하지 않아 이익을 더 많이 남기는 수단으로만 쓰기도 했다.

이처럼 A와 B 사이에는 진정한 신뢰도, 협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의 계약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을 뿐, 불행한 결과로 끝났다.

[사례2]전자회사 A. 디자인팀이 획기적인 디자인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 중이다. 그런데 초기 단계에서 기술팀에 문의했다가 “택도 없다”며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기술팀은 디자인이 잘 만들어져봤자 새로운 디자인에 맞춰 제품을 만드느라 자신들만 고생할 뿐, 모든 공은 디자인팀이 독점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존 디자인에서 아주 조금만 바꿀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디자인팀이 보기에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기술팀을 무시하고 디자인 개발을 추진했다. 마침내 완성된 디자인은 아름답고 세련돼서 최고경영자(CEO)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그러나 그 디자인은 현실에서 구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CEO의 독촉에 기술팀이 여러 달 동안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먹듯이 하며 노력했지만, 결국 그 디자인에 맞춘 새 제품을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그 사이 A회사는 1년 가까운 시간과 막대한 비용, 투입된 인력만 낭비해야 했다. 디자인팀과 기술팀이 처음부터 서로 협조적으로 나왔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참사였다.

[사례3]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A팀장. 어느날 B임원에게 불려가 “이러저러한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으니 관련 자료를 모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A팀장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 프로젝트는 그의 팀 안에서 이미 간단한 논의 후 “현실성 없다”는 판단 하에 파기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A팀장은 그 프로젝트가 ‘혁신적’이라고 믿는 얼굴의 B임원 앞에서 차마 거부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돌아오자마자 팀원들에게 현재 업무를 중단하고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파워포인트(PPT) 발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팀원들도 몹시 불만스러워했지만, “임원의 지시”란 말 앞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A팀장의 팀은 사흘 동안 밤늦게까지 일해가면서 PPT를 준비했다. 목적은 단 하나, “그 프로젝트는 수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B임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A팀장과 팀원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굉장히 힘들게 설명하고, B임원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도 B임원은 불만스러워했으며, 보강 조사를 명령했다.

결국 일주일이 걸려서 간신히 해당 프로젝트는 폐기시켰다. 그러나 그 사이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낭비돼야 했다. 단지 임원 앞에서는 “N0”라고 말할 수 없는 문화 때문이었다.    

세계는 공유와 개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상명하복적인 조직문화 속에 갇혀 있다.

기업간뿐 아니라 같은 기업 내 부처간에도 치열하게 경쟁하기만 할 뿐 협업이나 상생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상명하복식의 억압만 횡행하고, 상하간의 진정한 소통이 없다 보니 직원들의 창의성이 억눌려지고 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은 한국 경제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폐쇄적인 문화보다 개방적이고 협조적인 문화가 훨씬 더 큰 수익으로 연결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 문화의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경쟁만 있고 협업은 없다

국내 기업과 거래해온 한 외국계 기업의 임원은 “한국인들은 정말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며 “그 경쟁심이 존경스럽다가도 가끔 살벌하게 느껴져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하나의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기업끼리도 모든 걸 터놓고 협조하기보다 눈치싸움과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제휴사에게도 핵심적인 사안은 공개하기를 꺼린다. 모 대기업 직원 A씨는 “독점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힘이라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분명 비밀스런 정보가 기업의 힘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공유할 만큼 공유와 개방의 시대다.

이 점에 착안, 공유와 개방을 기초로 한 구글,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이 상상을 뛰어넘는 매출액과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전산(IT)기업 중에는 특허까지 받은 자신의 기술을 널리 개방한 뒤 타 기업이 그것을 흉내 낸 제품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소송을 걸어 고액의 특허료를 받아내는 곳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기업문화는 결국 트렌드에 뒤처지게만 만들 뿐이다. 그리고 트렌드에 뒤처지면, 갈라파고스에 갇혀 쓰러진 일본 기업들의 결말을 따라가게 될 뿐이다.

특히 폐쇄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안 해도 될 수고를 하거나 쓸데없이 비용과 인력이 낭비되는 일, 서로 불신하다가 느닷없이 뒤통수 때리는 일, 같은 기업 내 부서들이 같은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일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내 권리를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만큼 숨기기보다 공개해서 수익 창출을 노리는 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상명하복식 문화에 사라지는 창의성

한국 기업에서 일한 외국인 임직원들은 철저하게 상명하복식으로 이뤄지는 한국 기업의 문화에 의아함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노동 생산성을 기록한 나라로 나왔다.

주된 이유로는 ▲엄격한 구조와 계층 ▲의사소통 부족 ▲휴대폰과 사내 커뮤니케이터 ▲스트레스와 음주 후유증 ▲외관에 지나친 집착 ▲대졸 취업자의 능력 부족 ▲시간의 파킨슨 법칙 등이 지적됐다. 

특히 직장 내 소통이 상명하복식으로만 흐르다 보니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로 연결되고, 결국 윗사람 눈치만 보느라 부하직원들의 창의성은 매몰된다.

물론 70~80년대보다는 의사소통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 외국인 임원은 “한국인 상사들은 자기 의견에 대한 ‘반대’와 자신에 대한 ‘부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부하직원들이 반대의견을 하나만 내놔도 상사들은 ‘자신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고 불같이 화만 내는 것이다. 따라서 부하들은 상사의 눈치만 보면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기를 꺼리게 된다.

한 대기업 직원 B씨는 “회의나 회식이 잦아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상사의 훈계를 들으며, 고개만 끄떡이는 것이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의 기업에서는 CEO나 임원들이 부하직원들에게 훈계와 감시를 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으며, 심지어 오후 1시~3시를 ‘집중 업무 시간’으로 정해 자리를 뜨는 것조차 금지하는 회사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소통이란 결국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만 흐르게 된다. 아래에서 위로 가는 통로가 막히니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또 상사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다 보니 일이 없어도 야근이 지속되고, 어차피 야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부하직원들은 일을 대충 한다. 노동효율성이 극도로 저하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임원과 부장들은 여전히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결국 상명하복식 문화에 사장될 수밖에 없다.

노동효율성 증대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서는 상명하복식 문화의 타파가 절실한 분위기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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