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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도 법조인 될 수 있어야 … 사시 존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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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9 21:18:50 수정 : 2015-10-10 00: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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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로스쿨 개혁 나선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요즘 같으면 저는 법조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한규(44)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현대판 음서제’ 논란을 낳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다.

최근 일부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자녀들이 대국민 사법서비스 강화를 위해 도입된 로스쿨제도를 악용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일부 로스쿨 졸업생들이 부모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대형로펌이나 공공기관에 들어간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벌도 변변찮았던 자신의 처지에서는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의 길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일고 있는 작금의 법조계 세태에 혀를 찼다.

그는 지금처럼 로스쿨 입학 및 졸업 후 취업과정 등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은 존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이끌고 있는 김 회장은 ‘로스쿨 개혁’과 함께 법조인의 윤리 확립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내 집무실에서 사법시험 존치 및 로스쿨제도 개혁의 필요성 등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변호사 윤리가 무너지면 변호사의 공적 기능이 마비되고 결국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됩니다. 변호사들 스스로 자정능력을 보여야 합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오는 13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검토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고 이사장은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200 9∼2010년 김포대 임시이사 선임 안건을 다뤘는데도 2013년 김포대 이사선임결정 취소소송의 대리인으로 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공무원이나 조정위원, 중재인 등으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김 회장이 법조인 윤리에 추상과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살아온 환경과 무관치 않다. 그의 집안은 넉넉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중·고교 시절 학업성적도 시원찮았다. 서울 상문고 재학시절 반에서 60명 중 56등을 한 적이 있을 정도.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가천대(전 경원대) 법학과였다.

“그냥 점수에 맞춰 갔다”는 김 회장은 1990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사회 정의를 위해 무엇이든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법조인의 꿈을 꿨다고 한다. 그해 12월 인권변호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조영래 변호사의 사망도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많이 응원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주변에 마땅히 기댈 데도 없고 사법시험에 연거푸 낙방해도 어머니만큼은 늘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하지만 어머니는 1995년 시험을 보러 상경하던 아들을 응원하러 따라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어머니께 사법시험을 보겠다고 말씀드렸으니, 그만둘 때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잖아요. 그래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끝까지 시험을 치렀어요.”

그는 12차례의 도전 끝에 법조계에 입문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뒤 서민을 대상으로 소액사건만 맡고 있다.

“1500만원 상당의 액수가 걸린 사건에서 상대편 변호인과 재판부는 ‘큰 액수도 아니니 적당히 타협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돈은 제 의뢰인에게 전 재산과 다름없는 돈이어서 거부했고 결국 승소했습니다. 소송 당사자는 누구든 절박한 입장인데 액수가 크면 무겁고, 적으면 가벼운 사건이라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봐요.”

의뢰인들 사이에서 “자기 일처럼 나서는 믿을 만한 변호사”로 소문이 났다. 그 덕분에 소송이 끊이지 않는 변호사가 됐다.


김 회장은 누구보다 ‘가난한 자의 서러움’을 잘 안다. 그도 한때 살림이 넉넉치 못해 식당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나 같은 변호사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연줄이 없고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법조인이 돼야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어요.”

김 회장은 주변에서 “개천에서 난 용”으로 평가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살아온 환경이) 개천인 것은 그렇다고 쳐도 과연 법조인이 됐다고 ‘용’이라고 하면 될까요. 법조인은 사회의 ‘용’이 아니라 그저 보통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법률가가 돼야 합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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