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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통하며 개성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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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9 22:14:58 수정 : 2015-10-09 22: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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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중인 책 공개… 독자 의견 참조
달라진 세상… 자긍심 행여 잃을라
사무실에서 프린트된 원고나 서류 보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서류를 보면서도 버릇처럼 댓글이 달려 있는지 살펴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는 일도 잦다. 출판사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전자 결재, 의견 교환을 하는 일이 평상 업무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 실시간 쌍방 소통의 일상화는 종이책을 만드는 출판인의 의식마저도 바꾸어놓았다.

수시로 울리는 메신저 알람소리와 인터넷 쪽지 도착음은 홀로 있는 시간,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일에 곧잘 방해가 됐다. 원고 읽고 교열을 보는 동안 필사적으로 외부 반응에 둔감해지려 하고 내면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야 할 원고나 교정지를 붙들고 있는 동안엔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출판 공정의 모든 협업, 쌍방 소통은 의미가 있다. 사실 협업, 쌍방 소통 방식은 전통적인 책 만들기에서도 예사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 협업의 방식에 독자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출판사 내부 소통을 넘어선 외부 독자의 의견 수용은 책 만들기 지형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인터넷 시대 이전 출판사와 독자는 책 출간 이후에 접점을 이루었다. 독후감 형식의 피드백이나 저자 행사에서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평소에는 잘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가 독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의 독자는 살아 움직이는 조력자이자 입소문의 근거지다.

한 인터넷포털 사이트에서는 ‘사전 연재’란 코너를 만들어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편집 중인 특정한 책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원고를 신문이나 잡지, 온라인 매체에 연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개다. 기존에 저자가 원고를 연재하는 방식은 출판사 개입 없이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대개 저자는 독자 반응을 반영해 원고를 보완하거나 수정해 출판사에 초고를 넘겼다. 그런데 이 ‘사전 연재’는 출판사와 독자의 독특한 관계 설정을 유도한다. 편집이 어느 정도 된 마지막 단계의 교정지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 메시지를 담고 있는 원고를 비밀스럽게 편집해서 어느 순간 세상을 놀라게 하듯 펴냈던 종이책이 이제 그 편집 과정마저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책과 관련된 의견, 내용에 대한 의문, 심지어 오류 지적 등도 할 수 있다. 독자가 책 꼴을 완성해가는 데 일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출판사-독자라는 일련의 수직적 책 전달 방식이 변화한 것이다. 편집의 공개 검증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일은 역시나 인터넷 시대니까 가능한 일이다. 출판사 내부의 정보보다 더 많은 외부 정보가 유입돼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편집의 공개 검증 목적보다는 홍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더 많다. 책이 출간돼도 잘 알리기 어려운 다매체 시대의 복잡한 시장 상황에서, 가능한 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출판사의 의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로열티 높은 독자’를 확보해 책이 출간된 후 ‘우선 구매독자’가 되도록 유도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점차 좁아지고 있는 전통적인 출판 시장에서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물리적인 공간인 서점을 점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인터넷이라는 무한대 영토에 어떻게 책 정보의 씨앗을 뿌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출판사마다 원고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제멋대로 편집하는 각자의 스타일을 떠올리면 편집 중인 책을 공개하는 건 다소 멋쩍은 느낌마저 든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기존 방식이 아닌 낯설고도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하되 직업적 고집이나 자부심을 스스로 저버리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편 되뇐다.

외부와 소통하되 개성을 유지하는 바로 그 일, 인터넷 시대 모든 개인의 과업이라고 말하면 과할까.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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