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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이·땡보·꿀빤다… 특이한 '병영언어' 실태

입력 : 2015-10-09 16:06:49 수정 : 2015-10-09 17: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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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회에서는 듣기 힘든 '그들만의 용어' “‘구보’가 무슨 말이죠?” “‘총기 수입’은 총기를 외국에서 사온다는 말인가요?”

군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지만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용어들이 많다. 구보(驅步)는 달리기(뜀걸음)를, 총기 수입(手入)은 총기 손질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다. 광복 후 국군을 창설할 때 일본군 출신들이 주류를 형성하며 이와 같은 일본식 용어도 군대내에 자리를 잡았다. 9일 569돌 한글날을 맞아 아직도 군대에 적잖게 남아 있는 일본식 용어와 일반 표준어와는 거리는 먼 특이한‘병영언어’의 실태를 파악해 본다.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의 한 장면
MBC 제공
◆ “요즘 ‘짬찌’는 ‘꿀 빨지’ 말입니다(?)”

군대안에서 최근에는 일본식 한자어는 물론 비속어나 무분별한 말줄임, ‘다나까’ 형태가 결합한 ‘병영 언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 때문에 군 미필자나 여성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병영 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군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반 사회에서는 듣기 힘든 ‘그들만의 용어’가 널리 쓰인다.

장병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식(食)’과 관련된 용어다. 군대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 ‘잔반(殘飯)’이 변형된 ‘짬밥’은 ‘군대 식사’를 의미하는 형태로 자주 쓰인다. 군 복무 기간이 길수록 ‘짬밥’을 많이 먹게 되다 보니 군 복무 기간, 노하우를 나타내기도 한다. 요즘 병사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짬찌’는 ‘짬밥’과 ‘찌끄레기’(찌꺼기의 경상도 사투리)의 합성어를 축약해 만든 단어다. 선임병이 먹다 남긴 잔반의 양이 후임병이 먹은 식사량보다 많다는 의미로 주로 신병이나 계급 낮은 후임병을 부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짬순’이라는 단어는 ‘계급 순서’를 의미하고 ‘짬타이거’는 ‘짬밥’을 먹는 부대 주변 도둑고양이를 뜻하기도 한다.

군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 ‘의(衣)’와 관련한 용어로는 ‘깔깔이’가 가장 유명하다. 겨울철 장병의 체온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방한복 상의 내피’를 뜻하는 말이다. 보급품의 질이 떨어졌던 과거 병사들이 옷감의 표면이 까끌까끌하다는 의미로 ‘깔깔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내피이지만 선임병이 될수록 겉으로 빼입는 경우가 많다. 반합(飯盒), 침상(寢牀), 막사(幕舍) 등과 같은 일본식 용어도 의식주에서 나왔다.

또한 군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나 보직과 관련한 용어도 많다. 군대 작업 중 땅을 편평하게 하는 작업을 의미하는 ‘나라시(ならし)’, 작업을 끝마쳤을 때 쓰는 ‘시마이(仕舞い)’, 일을 해 가는 순서나 절차로 ‘단도리(だんどり)’ 등의 일본 잔재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군에서 편하게 지낸다는 ‘꿀 빤다’, 편한 보직이나 그런 업무를 하는 장병을 뜻하는 ‘땡보(땡잡은 보직)’도 자주 쓰인다. 병영 PC방을 뜻하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은 ‘사지방’으로 줄여부른다.

◆언어폭력으로 이어져…“실질적 개선 노력 필요”

병영언어는 영내에서 장병 간 결속력을 강화시켜준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언어폭력이라는 무기가 돼 계급이 낮은 장병에게는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의 ‘장병 의식 및 생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어폭력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장병은 3년 새 19.3%에서 12.1%로 낮아졌지만 ‘인권침해 유형별 심각성 정도’ 조사에서 ‘언어폭력’(13.7%)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등 여전히 병영 내에는 언어폭력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2009년부터 병영 언어문화 개선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3월에는 ‘2015 병영 언어문화 개선 추진계획’을 마련, 장병 주도로 좀 더 체계적인 언어순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그 일환으로 오는 12월말 ‘병영언어 순화 지침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지침서는 잘못된 표현들과 순화된 표현들을 사전처럼 구성될 예정이다.

바른 병영언어 생활화를 위한 ‘언어개선 선도부대’ 선정도 지난해 10개에서 올해 25개로 늘렸다. 육·해·공군, 해병대 선도부대는 지난 3월부터 오는 11월까지 8개월간 자체적으로 병영언어 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활동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다 더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 중인 한 위관급 장교는 “병사의 병영언어를 지도해야 할 간부들의 언어습관부터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연유도 모르고 써온 군대용어를 오히려 간부들이 더 많이 쓴다”고 꼬집었다. 또한 최근 육군의 모 부대에서 전역한 김모(22)씨는 “국방부에서 바꾸라고 해도 사실상 야전부대에서는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군대용어 개선을 위해 메리트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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