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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세계는

입력 : 2015-10-08 22:18:57 수정 : 2015-10-09 09: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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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통해 리얼리티 추구… 인간 존재 본질 탐색 진력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는 생생한 현실에 기반을 둔 자신만의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이란 독특한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 그녀는 한 주제를 잡으면 수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논픽션 형식으로 작품을 써왔다. 이렇게 써낸 작품은 일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는 영혼이 담긴 산문으로 큰 울림을 자아냈다. 단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벨라루스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간)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다음(多音)의 작품을 써 왔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군에서 제대한 후 아버지의 고향 벨라루스에 정착했고 그녀는 그곳 지역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민스크 대학 저널리즘 학부에 입학해 학생 신문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으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훈련을 받았다. 단편소설, 에세이, 기사 등 다양한 장르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 그녀의 선택은 벨라루스 유명작가 아다모비치에게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저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었다”면서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으로는 국내에서도 최근 출간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가 꼽힌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비참한 실상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한 이 책은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을 묘사하지 않고 아픔과 고뇌에 방점을 찍었다는 이유로 2년 동안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1985년 출간돼 200만부 넘게 팔렸다. 작가 자신이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독백들이다.

1989년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한 ‘아연 소년들’을 출간했다. 자료를 모으기 위해 4년 동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희생자들의 어머니들과 퇴역 군인들을 만났다.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1992년에는 민스크에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1993년에는 사회주의 본토가 몰락하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에 매료되다’를 펴냈고 영화로도 각색됐다. 1997년 펴낸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는 국내에도 2011년 새잎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2006년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실화다.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35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전 세계에서 영화와 연극, 방송극용 대본으로 활용됐으며 쿠르트 투홀스키 상, 안드레이 시냐프스크 상, 독일의 ‘최고 정치 서적 상’ 등 여러 국제적인 상도 수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작품의 동력에 대해 “늘 각각의 인간에게 인간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 개인 안의 그러한 인간성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서 “사람들 안의 많은 것은 여전히 예술의 수수께끼”라고 언급했다.

다림질을 하다가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알렉시예비치는 발표 직후 스웨덴 SVT 방송과 전화 인터뷰에서 “복잡한 기분”이라면서 “환상적이지만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즈음은 새 책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The Wonderful Deer of the Eternal Hunt)’을 마무리 중인데 이는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현실에 대해 주로 썼지만, 그것만이 인간의 삶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강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가 사는 나라는 어떤 곳인지 묻고 싶다”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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