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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피아·파인토피아… 부끄러운 '나랏말싸미'

입력 : 2015-10-09 06:00:00 수정 : 2015-10-09 1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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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영어 붙인 마구잡이 조어… 행정구호 218곳 중 104곳 ‘외국어’
전국 지자체가 내세우고 있는 ‘행정구호’ 중 절반 가까이가 외국어 문구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해당 언어를 쓰는 외국인조차 뜻을 알기 어려운 구호도 있었다.

세계일보와 한글문화연대가 8일 전국 지자체의 행정구호를 전수 조사한 결과, 행정구호를 가지고 있는 지자체 총 218곳 중 104곳(47.7%)이 외국어가 들어간 문구를 쓰고 있었다.

외국어 문구가 들어간 전체 행정구호 중 84.7%(88곳)가 영어 문구였다. 한·영, 한글·한자 혼용은 각각 7.7%(8곳), 6.7%(7곳)를 차지했다. 한자로만 이뤄진 구호를 쓰는 곳도 1곳 있었다.

◆미국 도시를 방불케 하는 지자체 행정구호

영어 행정구호를 쓰는 지자체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 지역으로 나타났다. 경기 지역 중 외국어 행정구호를 쓰는 지자체는 ‘클린(Clean) 광주’, ‘오투(O2) 군포’, ‘베스트(Best) 김포’, ‘판타지아(Fantasia) 부천’, ‘두 드림(Do Dream) 동두천’, ‘시티 오브 마스터즈(City of Masters) 안성맞춤 도시 안성’ 등 16곳에 이르렀다. 행정구호가 있는 이 지역 지자체는 총 30곳으로 절반 조금 넘는 곳이 외국어를 쓰고 있는 셈이다.

부산 지역은 ‘브라이트(Bright) 강서’, ‘스마일!(Smile!) 금정’, ‘싱 싱 싱(Sing Sing) 동구’, ‘체인지 모어(Change More) 남구’ 등 12곳으로 경기보다 그 수는 적었지만 비중은 80%로 훨씬 높은 비중으로 나왔다. 강원, 경남 지역도 모두 11곳으로 외국어 행정구호를 쓰는 지자체가 많은 지역에 속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영어 단어를 이용하는 지자체가 많다 보니 비슷한 문구도 많이 발견됐다. 부산 금정구와 강원 춘천시는 각각 ‘스마일!(SMILE!) 금정’과 ‘스마일(Smile) 춘천’을, 울산시와 경남 김해시는 ‘울산 포 유(for you)’와 ‘김해 포 유(for you)’로 거의 똑같은 문구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지자체들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브랜드이기에 영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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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이해 못하는 영어구호도 수두룩

일부 지자체의 영어 행정구호는 외국인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어서 글로벌시대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영어를 사용했다는 지자체의 설명을 무색하게 했다.

소나무의 일종인 춘양목을 지역 상징물로 정하고 있는 경북 봉화군은 소나무를 뜻하는 영어 단어 ‘파인(Pine)’과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를 합쳐 ‘파인토피아(PINE TOPIA) 봉화’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봉화군은 ‘파인(PINE)’의 영어 철자에 각각 ‘사람(People)’, ‘농·산업(Industry)’, ‘자연(Nature)’, ‘흥미진진한 문화(Exciting)’ 등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알 수 없는 견강부회식 설명이었다.

대구 남구의 ‘드림피아(Dreampia) 대구 남구’, 경북 울진군의 ‘마린피아(Marinepia) 울진’, 서울 도봉구의 ‘그린피아(Greenpia) 도봉’ 등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마구잡이식 조어로 구호를 만들었다. 경남 밀양은 ‘용’을 뜻하는 우리말 ‘미르’를 영어 단어에 합쳐 해외 홍보 효과가 의심스러운 ‘미르피아(Mirpia) 밀양’이라는 기상천외한 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은 해당 구호에 대해 “너도나도 영어식으로 튀어보이려다 구호 본연을 역할 못하게 된 경우”라고 지적했다.

8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이 대형 훈민정음 이미지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이재문 기자
◆아름답고 알기 쉬운 한글 행정구호


반면 우리말만으로 우수한 구호를 만들어낸 지자체도 있다. 충남 공주시의 ‘흥미진진 공주’, 강원 홍천군의 ‘맛있는 휴식 홍천’, 전북 부안군의 ‘자연이 빚은 부안’, 장수군의 ‘장수만세’, 전남 영광군의 ‘천년의 빛 영광’, 경기 용인시의 ‘사람들의 용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위원은 “정부 지자체가 누구를 위해 각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어설픈 영어 이용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이라면서 “각 지자체 주민과 소통을 생각해서라도 가장 현명한 답을 한글에서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준·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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