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삶에 짓눌린 가장들… 가족들과 짐 나눠라

입력 : 2015-10-08 19:04:12 수정 : 2015-10-09 01:00:4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극단적 선택은 금물
지난 7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일가족 사망 사건은 가장인 이모(58)씨가 생활고를 비관한 나머지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집안 가장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일가족 사망 참극’이 잇따르면서 ‘죽음도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가장들의 왜곡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일 서울 강서경찰서 등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딸 이모(16)양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잘해 특목고에 진학했다. 지난 1월 이씨 가족이 강서구로 이사온 것도 딸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주민들은 이씨가 평소 잘 웃는 성격이고, 아내(49·여) 역시 몸은 불편했지만 집안을 잘 정돈하는 등 겉보기에 평범했던 가정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경찰조사와 유서에서 보듯, 이씨는 아내가 말기 암 환자로 장애판정을 받은 데다 빚을 많이 져 심적·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씨는 이사를 오면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해 정부 지원금을 받았으며, 집도 정부의 전세 지원을 받아 구했다. 도저히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겠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끝내 아내와 딸을 먼저 살해하고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씨의 유언장에는 동반자살에 대한 내용이 없었고, ‘혹시 딸이 깨어나면 병원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이씨의 가족이 모두 자살에 동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 서초구에서도 흡사한 사건이 있었다. 40대 가장인 강모(48)씨는 “조금 더 있으면 정말 추한 꼴을 보일 것 같고 혼자 가면 남은 처자식이 불쌍한 삶을 살 것 같아 함께 가려 한다”며 아내와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온 나라에 경종을 울린 ‘송파 세 모녀’사건도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 박모(60·여)씨가 다친 후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다 두 딸과 함께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린 가장들이 가족들을 살해하거나 설득한 뒤 동반자살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전문가들은 “삐뚤어진 책임 의식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이라고 비판하며, 어린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등 왜곡된 가장 중심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의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자녀 살해는 230건에 달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도 “우리 사회에는 가장이 가족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본인이 목숨을 끊을 때 가족까지 살인하는 결과로 치닫는다”면서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진정한 가장의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usu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