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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쉬우나 변화가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른다.” ‘세종실록’에 실린 1443년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내용이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궁궐 내 시험 사용 기간을 거쳐 3년 뒤 ‘세종실록’은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린 세종의 서문을 기록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옛말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문구다. 구구절절이 백성의 고초를 살피는 따뜻한 마음씨가 묻어난다. 자주·민본·실용 정신이 담겼다. 훈민정음 창제에 담긴 뜻이 이렇듯 깊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는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런 진정성 덕분에 문자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창제원리가 알려진 문자다. 그런 내용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왼손에 들려있는 바로 그 책이다.

훈민정음은 유학자들의 홀대를 받으면서도 평민과 여성들 사이에 널리 쓰였고 1894년 갑오경장 때 공용문자로 인정받았다. ‘한글’이란 이름은 1910년대 초에 주시경 등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했다. ‘큰 글’이란 뜻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일제 강점기의 시련 속에서도 맞춤법이 통일돼 표준어가 정착됐고 광복 이후에 그 꽃을 피우게 됐다.

요즘 젊은 층은 한글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 말에 욕설이나 거친 표현이 많이 섞이고 극단적인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급속히 늘어 우려를 낳는다. 예를 들어 ‘핵노잼’은 ‘핵폭탄급으로 재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낳은 부작용이다. 한글 파괴 현상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오늘이 569돌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는 날이다.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의 언어습관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한글사랑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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