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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우리가 사법부를 믿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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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4 22:33:15 수정 : 2015-10-05 0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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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록 어디에도 ‘비타500’ 상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 2일 첫 재판을 받으면서 했던 진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비타500 상자는 성 전 회장이 2013년 4월 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였던 이 전 총리에게 현금 3000만원을 담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검찰은 그 돈이 비타500 상자에 담겨 건네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공소장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재판 다음 날 도하 언론은 이 전 총리의 비타500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공소장에도 적시되지 않은 비타500은 이 재판의 쟁점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 문제를 기사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정선형 사회부 기자
이날 법정에 출석한 방청객들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주고받는 법정 대화를 듣고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증거 적용 가능 여부’, ‘서증 관련 검찰의 증인 신청’ 등 어려운 한자어가 대부분인 재판정의 대화는 난수표를 읽는 듯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증거들마저도 ‘증 82호’, ‘증 36호’ 등 증거번호로 나열됩니다. 이러다 보니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제외한 일반 방청객들은 재판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법조계 출입기자라면 첫번째 공판 기일을 지나면 방청석이 한산해지는 광경에 익숙해집니다. 직접적으로 사건과 연관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이 봤을 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투성이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큰 관심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종국에는 출입하는 기자들마저도 비타500 같은 소재에 귀를 솔깃해하는 것 같습니다. 성 전 회장 사망 사건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성 전 회장 사망 2주가 넘어가자 동료 기자들마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명쾌한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다보니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의 커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법부가 받아든 초라한 성적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우리 국민 27%만이 사법부 신뢰)는 이런 불신이 쌓이고 쌓인 결과입니다.

그동안 법조계 각계에 이 문제를 질문했지만 각계는 남탓하기에 바쁜 모양새입니다. 법원의 일부 판사들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검찰은 검찰대로 “재판 결과가 오락가락하는데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느냐”면서 볼멘 표정입니다. 사법시험 존치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변호사 업계에선 “법관 임용이 투명하지 않으니 누가 사법부를 믿겠느냐”고도 합니다. 양측 모두 27%에 불과한 국민의 사법부 신뢰 지수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법조 일원화 같은 제도적 차원의 개선책도 마련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사법부 구성원들이 사법 절차를 보다 투명하고 알기 쉽게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선형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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