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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의 아버지’ 주희는 탁월한 행정 개혁가였다

입력 : 2015-10-03 03:00:00 수정 : 2015-10-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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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침입으로 어지러웠던 남송시대
稅 감면 등 민생정책 진언… 백성 돌봐
기득권층, 힘 지키려 주자학 권력화
후대선 잘못 적용… 왜곡·폄훼 당해
수징난 지음/김태완 옮김/역사비평사/9만8000원
주자평전 전2권/수징난 지음/김태완 옮김/역사비평사/9만8000원


주자학은 조선조에 들어 성리학으로도 불렸다. 고려 말 전래돼 조선조 건국 이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함빡 꽃을 피웠다. 주자학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조선의 정치, 사상, 문화, 일상생활까지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점차 공리공담의 학문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훗날 실학파들은 주자학을 교조적이고 관념론적이라고 비판했고, 이런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이어지고 있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1130∼1200)를 배출한 중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원과 명대에선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했고, 공산혁명을 거치는 동안 주희는 ‘도학 사기꾼’으로 폄훼되기도 했다. 마오쩌둥 지시에 따른 급진 좌파들은 주희를 ‘공가점(孔家店)의 아류’라는 극언으로 비난했다. 공가점이란 공자의 학설 또는 유교사상을 선전하는 거점을 뜻하는 말로, 아주 비꼬는 표현이다.

주희가 자주 찾았다는 중국 푸젠성 구곡계의 절경. 남송시대 현자들이 논쟁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역사비평 제공
이 책은 주희에 대한 이 같은 종래 인식이 잘못됐으며 주자의 본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자학은 공리공론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학문이며 정치개혁 사상이었다는 논리가 펼쳐진다. 저자는 푸단대학, 저장대학 등에서 주자학을 연구한 원로로, 중국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이다.

모든 사상이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대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주희가 활약한 시대는 남송이었다. 왜적 침입에 따른 잦은 부역과 행정 난맥으로 어지러운 시대였다. 주희는 과거에 합격했으나 시험 성적은 그리 우수하지 않았다. 맡은 직책도 미미했다. 그의 나이 24세 때 조그만 고을의 주부(일종의 면서기)로 부임해 경계(經界) 일을 맡았다. 토지 측량, 토지 경계 등을 정비하는 업무였다. 그러나 나이 쉰(1180년)에 이르러 세금 감면과 부역 면제, 가뭄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돌보는 진황 정책을 진언해 성공시킨다. 이런 공적으로 지방관료에서 일약 조정 관리로 승차해 고종, 효종, 광종, 영종 4대를 이어 벼슬을 지낸다.

남송시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주희 초상화.
역사비평 제공
주희는 한때 경연관으로 발탁돼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경연관 근무기간은 고작 46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전후해 자신의 정치철학, 즉 주자학의 이론적 체계를 완성한다. 행정개혁가로서의 주희의 면모는 이 시기에 드러난다. 저자는 지금까지 이론사상가로서 주희의 면모에 편중된 나머지 그가 남긴 행정적 실력을 간과했다고 강조한다.

주희는 ‘인본주의 인간학’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당시의 낡은 천인합일의 체계를 새롭게 정립해 ‘인본(人本)’과 ‘이본(理本)’의 통일체계를 성립시킨다. 여기에 도가와 불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삼교합일(三敎合一)’을 이뤄낸다. 이런 유불선의 합일을 추구한 것은 주희가 젊은 시절 도가와 불교에 심취해 이해도를 높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이론(인식)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했다.

책에는 당대 사상가 여조겸, 육구연 등과 유교·불교에 대한 논변을 거치면서 사상의 일치와 합일을 추구한 대목들이 적잖게 나온다. 이런 수많은 논쟁 끝에 주자학이 완성된다.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과 함께 성리학을 혁명의 이념으로 수입하면서도 불교를 억압했던 숭유억불 정책은 주자학을 혁명의 명분에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불교는 고려조에서 번성한 종교였다.

주희는 봉건적 전제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의 현실에서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을 정립했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저자는 ‘학문 권력’ 때문에 주자학이 후대에 잘못 적용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주자학이 학문 권력화되면서 동아시아 전근대사회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주자학 자체의 이론적 결함의 문제라기보다는 주자학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권력집단의 기득권 문제”라고 해석한다.

1190년 지방행정의 폐단을 지적한 상소에서는 주희의 정치개혁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관에서 이미 불법을 저지르고 아전이 또 간사한 짓을 합니다. 가난하고 약한 백성이 받는 피해는 더욱 큽니다. 만약 경계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러한 병폐의 근원을 혁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정 실력자들의 방해로 그의 주장은 물거품이 된다. 수많은 자료와 주고받은 많은 편지 속에서 드러난 주자학의 갖가지 논쟁이 이 책에 생생하게 복원돼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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