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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뛰놀 듯… 장난기 넘치는 붓질

입력 : 2015-09-22 21:15:16 수정 : 2015-09-23 08: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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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구서 전시회 여는 이명미 작가 금욕적인 단색화 일색 시대인 1970년대에 실험적인 화려한 색채 그림으로 한국현대미술의 또 다른 축을 만들어 온 이명미(65) 작가에게 지난 45년의 세월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헛된 발걸음은 아니었다. 최근 그는 거의 같은 시기에 화랑과 미술관에서 동시에 전시초대를 받아 자신의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있다. 10년의 세월만 흘러도 많은 작가들이 화단의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것도 미술계 주류의 흐름에 거슬러 자신만의 작업을 고수해 왔다는 점은 한국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강소 최병소 작가 등과 함께 그는 1974년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대구현대미술제’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대구는 한국현대미술, 한국추상미술의 형성과 전개에 구심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작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세계를 모색하는 이명미 작가. 그린다는 원초적 행위는 그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날갯짓’이라고 말한다.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 사람들에게 활기찬 기운을 주고 있다.
“당시는 색과 형상이 드러나면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휩쓸려 안 들어간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시대를 거스른다 해도 내가 하고자 한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10월30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와 내년 2월9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화려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회화, 조각 등 그동안의 작업을 보여준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붓질,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을 통해 밝고 명랑하면서도 힘찬 에너지를 발산하는 작품들이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컵, 의자, 화분이나 유행가 가사 등 익숙한 소재를 캔버스에 담아내 관람객들도 친근하게 다가서게 만든다.

‘여자’
“저는 1970년대 미니멀하고 금욕적인 분위기에 저항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 때 개념작업을 해도 원색적이었지요. 어느 순간부터 형이상학적인 개념작업마저도 부끄러웠어요. 괴롭기도 했고요. 감성적인 유연한 흐름에 끌리고 솔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감성 플레이’, 즉 놀이로 여기고 있다. 어린아이가 놀이터에서 꿈동산을 만들 듯 꽃동산을 피워 간다. 다만 뜨겁게 할 것은 끓이고 차게 할 것은 식힐 뿐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그림은 꿈꾸는 장(場)이자 무한한 필드다.

“저는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정신상태가 히스테리적일 땐 붓을 안 들어요. 중구난방의 선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균형을 잡았을 때만 강한 선이 나와요. 눈물을 쏟기보다 안에서 삭혀서 분출시키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탈도 정격(正格)이 구축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기’
그의 그림은 자아중심적 어린이 그림 속 형상들처럼 과감하게 생략되고 변형되었지만 대상의 본질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이미지가 생동하다. 속도의 완급, 힘의 강약이 리듬을 타는 장난기 넘치는 붓질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꾹꾹 반복적으로 찍어나간 점들도 힘이 넘쳐나게 해 준다. 색면의 낯선 원색 대비가 싱싱함을 자아낸다. 낙서처럼, 때로는 기호나 문양으로 ‘그리는 회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요즘 뜨고 있는 단색화의 ‘무위의 미학’ 논리와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면서도 다른 가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벌써부터 그가 단색화 이후의 새로운 ‘재료’로 주목받는 이유다.

“찌르면 악 소리는 내야 합니다. 그냥 무표정하게 있는 것을 정신성으로 포장해서는 안 되지요. 종교적 구도의 여정이니 하는 말들은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로고스도 아닌 과욕이요 허세입니다.”

‘말 탄 여인’
이 지점에서 미술평론가 김영순의 평가는 정곡을 찌른다. 단색화를 생육시킨 ‘무위의 미학’을 비극적 소요유(逍遙遊)라 한다면, 이명미의 ‘놀이’가 지향하는 ‘회화의 본향’은 낙천적 소요유라고 했다. 이명미 작가는 위암 투병 중에 딸을 종양암으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같은 길을 가던 언니는 세상을 먼저 등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서 낙천성을 뺏어가지 못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저는 핏속에서 누가 하지 마라 하면 또 한번 해보고 실험을 해 봅니다. 대중가요 가사를 그림에 쓰는 것도 모두들 하지 말라 했지요. 하지만 대중가요 가사만큼 노골적이고 가슴을 우려내는 것이 있습니까. 공감각인 요소를 그림으로 풀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그의 세계가 분명 한국미술을 풍요롭게 해주리라 믿는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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