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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울리는 신종 고리대금업… 소액대출의 ‘배신’

입력 : 2015-09-18 20:47:07 수정 : 2015-09-18 2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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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이자 교수인 방글라 유누스
빈민 재기 돕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 받기도
휴 싱클레어 지음/이수경, 이지연 옮김/민음사/1만9000원
빈곤을 착취하다-소액 금융의 배신/휴 싱클레어 지음/이수경, 이지연 옮김/민음사/1만9000원


최근 인터넷이나 TV 등에 소액대출 광고가 부쩍 늘었다. ‘빠른 대출’ ‘손쉬운 대출’ 등이 그것이다. 국내에 소액금융이 본격 도입된 시기는 2008년 무렵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구제한다는 명목 아래 정부는 소액금융 영업을 하도록 허가했다. 두 차례 경제위기로 파산했던 수많은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제1금융권 등에서 대출받기 어려우니 비싼 이자를 주고라도 우선 급한 불을 끄자는 것이다. 그러나 소액금융이 질곡이라는 사실을 파산자들은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정부 당국은 왜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을까.

‘빈곤을 착취하다’는 소액금융의 실태와 맹점을 제대로 짚었다. 책에 적시한 내용들은 미국 내 상황이다. 하지만 소액금융은 한국에서도 성업 중이다. 소액금융은 애초 선의에서 출발했다. 무하마드 유누스(75)라는 방글라데시 교수이자 기업인이 처음 시작했다. 그는 소액금융으로 빈곤퇴치 운동을 벌였다. 돈 없는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줘 재기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유엔은 유누스의 캠페인을 지지하면서 2005년을 소액금융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유누스는 이런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일본, 한국 등에서는 차례로 소액금융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증시 상장 소액금융사도 잇달아 생겨났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소액금융사는 정기예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짜’ 은행이 아니다. 미국의 일부 소액금융기관들은 연 50% 이자를 받기도 한다. 파산한 사람들을 재기하도록 도와주는 게 아니다. 돈이 궁하고 급한 사람들에게 ‘빨대’를 들이대 돈을 빨아들이는 흡혈귀 방식이 되고 있다. 이윤과 이자는 지역사회 내에서 재순환하는 게 아니다. 먼 곳에 있는 경영자와 해외 투자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극소수 부자들에게 막대한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다수의 사람들은 부채의 노예가 되는 구조가 지금의 소액금융업이다.

저자는 “나는 10년 동안 미국 내 여러 소액금융사에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 주장은 무시되었다”면서 “정직하고 성실하며 선한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그저 ‘이윤’이라는 한 가지 동기로 움직이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워 나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조직적인 홍보와 과대광고도 한몫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명 인사, 연예인들이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대형 상업은행들도 뛰어들어 짭짤한 수익을 챙기는 실정”이라고 폭로한다.

소액금융 이용자의 대부분은 극빈층이 아니다. 상당수가 하위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으니 소액금융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은행의 신용점수에 미달하는 사람들이다. 대출금이 생산적인 용도에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대출금을 갚거나, 이런저런 비용을 납부하거나 일반 소비활동에 쓴다. 돈은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빚만 엄청난 속도로 쌓여 간다. 실제 이자율은 공식 명시 이자율보다 훨씬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저자는 “소액금융은 어느새 높은 이자율에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금융 관행으로 변모했다”면서 “미션 이탈 리스크(소액 금융이 자체 미션을 잊어버린 채 빈곤층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상업적 목표만을 추구하게 되는 리스크)는 소액금융기관들 사이에 이미 만연해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어 “소액금융사에서 이익만 추구하는 부류들을 솎아내야 한다”면서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앞으로도 소액금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허한 약속과 빈 주머니만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평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착취하는 금융계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면서 “소액금융의 특징처럼 되어 버린 터무니없는 과대 선전을 배제하고 파산한 사람들이나 빈자들을 도와주는 실질적인 개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내 실정도 유사하다. 정부가 지원해줘야 마땅한 파산자나 빈민지원 프로그램이 자본가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 일본의 자본가들이 인수한 국내 소액금융사들은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소액금융 영업을 허가해준 정부 관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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