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아물지 않는 분단의 상처… 절망은 현재 진행중

입력 : 2015-09-17 20:27:10 수정 : 2015-09-17 20:27:1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질곡진 현대사 다룬 소설 2제
한국 현대사의 집약된 상처를 북과 남에서 견디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장편소설로 출간됐다. 올 세계문학상 우수작으로 뽑힌 이성아의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나무옆의자)와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실천문학)이 그것이다. 두 작가 모두 1960년생이다. 성실한 취재와 정제된 문장, 오래된 가족사의 아픔이 녹아든 눅진한 문장들이 실어 나르는 핍진한 서사는 이즈음 한국문학의 파탄과 가벼움을 운위하는 이들의 말문을 막을 만하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작으로 뽑힌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한국 문학에서 최소한 확보해야 할 소설’이라고 평했다. 한국문학이 외면할 수 없는, 이제는 직면해야 할 대상이 한반도의 반쪽 북쪽의 삶이다. 이성아가 파고든 지점은 북쪽 사람들의 익히 알려진 고단한 삶이 아니라 일본에서 북의 선전에 속아 만경봉호를 타고 ‘귀국’했던 재일동포들의 고난이다.

일본 땅에 사는 조선 사람 ‘자이니치’들이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자존, 혹은 슬픈 문신으로서의 국적 ‘조선’을 고집하다가 그들이 살 유토피아인 줄 알고 간 곳이 북쪽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와 동갑내기인 백소라(후코오카 조선인 부락에서 살다가 1972년 12살 때 부모, 오빠와 북으로 간)의 비망록과 일본에서 보험 외판원으로 일하는 그네의 외숙모가 30여 년 북을 오가며 그들을 뒷바라지한 사연, 인도적 맥락에서 북을 오가며 결핵 약을 사서 전달하는 ‘미오’라는 여자, 이들 세 명의 교차된 진술로 전개된다.

‘얼음 같은 표정으로 뜨겁게 환영하던’ 형용모순의 첫 만남에서 이들 가족은 북에서의 앞날을 예감했을지 모른다. 스파이로 몰려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가 스스로 혀를 자르고 죽어간 사연, 차별하지 않는 조국으로의 귀국을 선창했던 오빠의 비극적인 죽음, 엄마의 자살, 탈북하던 강가에서 총에 맞아 죽은 비망록의 주인공 소라. 그네의 딸 해랑은 8년 만에 어렵게 다시 찾은 엄마의 친척에게 하느님을 일본어로 무어라 하는지 물은 뒤 그 하느님이 당신이라고 말한다.

이성아는 “일본은 국제적십자사를 앞세워 한 사람이라도 더 등 떠밀 궁리를 했고, 북한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국제사회에 선전할 기회로 이용했으며, 남한은 무책임했다”면서 “역사의 편린이라고 묻어 두기에는 아직도 그들의 삶이 너무나 생생하게 현재진행형”이라고 썼다. 심사위원 임철우는 “자칫 조심스럽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소재임에도, 작가는 냉정함과 치밀함을 잃지 않고 시종 생생하고 긴박감 넘치는 서사와 풍경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유령의 시간’


김이정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변주한 작품인 만큼 울림이 더 각별한 작품이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는 가정사를 배경으로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가 아름답고 총명한 부인을 맞아 두 아들과 갓난 딸을 둔 채 수배된 처지였다. 경찰은 아내와 젖먹이 딸을 대신 잡아갔고, 6·25전쟁이 터졌다. 그 아버지 ‘이섭’이라는 사람은 사회주의의 천국이라는 곳으로 월북했다가 폐허에 가까운 현장을 목격하고 다시 위험천만하게 임진강을 건너와 가족을 찾았다. 그 가족은 이미 그를 좇아 형이 데리고 북으로 갔고 아내의 종적은 찾을 길 없었다.

남에서는 사상범으로 잡혀 감옥에서 5년을 살다가 나와 우여곡절 끝에 다른 여자를 만나 1남3녀를 낳은 뒤 ‘사상범’ 족쇄에 묶인 채 자서전 ‘유령의 시간’을 집필하다가 사망했다. 남쪽에 내려와 남긴 딸 김이정은 아버지의 자서전 유작을 소설로 완성한 것이다. 아버지가 사망한 해가 1975년이니 딱 40년 만이다. 김이정은 “아버지의 죽음은 결국 사회적 타살이 아니었나 싶은데 놀라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이념이 부각될까봐 걱정이지만 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마가 아름다웠던 아내 ‘이진’, 그네와 낳은 2남1녀. 북으로 그를 따라간 이들이 행여 간첩으로라도 내려올까 싶어 외진 서해 해변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소설 속 아버지 ‘이섭’. 체온이 식지도 않은 첫 남편을 땅에 묻고 이섭에게 온 미자. 그네가 낳은 김이정을 포함 딸들과 아들. 그 사이에서 그리움과 미안함과 애틋함을 안고 생의 마지막을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 작가는 남북작가대회 성원으로 북에 갔다가 평양에서 이복형제들을 만나려고 하지만 좌절한 채 평양 거리를 내려다보며 비명을 지른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현실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이정은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송추에 모신 아버지에게 가서 소주를 따르고 바쳤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