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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기다랗고… 삶의 정겨움이 숨쉬는 골목

입력 : 2015-09-12 00:00:00 수정 : 2015-09-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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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효 지음/안병현 그림/씨드북/1만1000원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길상효 지음/안병현 그림/씨드북/1만1000원


이른 아침 부지런한 청소부 아저씨가 쓸고 간 골목이 학교로 일터로 항하는 이들에게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공간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남의 집 유리창을 깨 먹고 야단을 맞아도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다가, 하루 일을 끝낸 고단한 가장에게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귀갓길이 된다. 다른 사람이 설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이 풍경이 되는 골목의 얼굴이다.

“꺾이고 끊어지고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골목이 어디로든 누구에게든 데려다줄 거예요. 골목이 우리를 데려다줄 거예요.”

좁고 기다란,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는 골목이란 공간에 신나는 놀이와 소박한 생활, 세대를 잇는 만남과 호젓한 사색이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명소라는 이름으로 남은 몇 안 되는 골목에서 관광객들을 잠시 걷어내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포착될 모습들이 있다. 모퉁이 뒤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시작으로 구석구석이 이야기로 채워지는 그 그리운 모습들을 빼곡히 담은 책이다.

동트는 새벽. 다닥다닥 모인 집들 사이로 리어카를 끌고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뒷모습과 함께 골목의 하루가 시작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앞마당인 낙엽을 쓸고, 할머니들의 왁자한 수다와 웃음이 넘치는가 하면, 온통 숨을 곳이라서 할 때마다 신나는 숨바꼭질로 하루가 저물고, 줄 지어 가는 개미 떼를 구경하다 보면 혼자여도 지루한 줄 모르는 골목. 그 골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어느새 가려고 했던 그곳에 도착해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사나운 개가 덤벼들 수도, 덜 마른 개똥을 밟아 미끄러질 수도 있다. 빗물 웅덩이에 발을 첨벙 적실 수도,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큰 소리로 싸우는 어른들을 볼 수도 있다. 고추를 빨갛게 잘 말리려면 담벼락 그림자가 움직일 때마다 볕이 드는 곳으로 계속 옮겨 주어야 한다. 휘고, 꺾이고, 갈라지고, 다시 합쳐져서 숨을 곳이 많은 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닌 골목. 규칙과 예측을 벗어나는 구조가 만들어내는 삶의 재미난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넓은 운동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좁고 긴 곳이라서 더 재미난 놀이들이 있다. 골목 어디에서 친구들이 ‘왁!’ 하고 튀어나올지 모른다. 골목은 아이들만 신나는 곳이 아니다. 좁은 골목 한쪽에 평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자주 웃음을 터뜨리시던가. 골목이 좁은 만큼 더 큰 즐거움과 더 큰 정겨움이 쌓여만 간다.

“사라져 가는 골목을 되살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저, 골목이 있었던 이야기예요. 아직 어딘가에 이런 골목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요.”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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