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넘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됐던 ‘궁동산개나리언덕’이 최근 고급빌라를 짓기 위한 개발행위(형질변경)로 인해 벌건 흙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 공사장 밖 공원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재문 기자 |
4일 개나리언덕살리기주민대책협의회와 서울시·서대문구청 등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체 I사는 2003년 9월 연희동 산 89-1번지 5083㎡(약 1537평)를 당시 공시지가인 9억원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했다. 인수 뒤로도 2009년까지 별다른 개발 시도는 없었다. 2009년 11월 I사는 서대문구청에 개발행위허가(형질변경)를 신청했다가 한 달 만에 취하했다. 비오톱으로 묶여 개발할 수 없고 개발을 위한 진입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뒤인 2013년 2월 다시 개발업체는 서울시에 비오톱 조정신청을 냈다. 나무가 많이 사라져 비오톱 1등급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비오톱은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생물서식지다. 건설업계에서는 그린벨트보다 개발이 더 어려운 곳으로 통한다.
주민 이모씨는 “비오톱 조정 당시 인부들이 나무를 자르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며 “구청에 전화로 민원을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2013년 2월27일자 구청의 ‘비오톱 관련 현장조사 보고서’에도 “대상지 내 일부 수목이 쓰러져 있는 상태로 벌목된 수목도 있는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기록돼 있다. 구청 관계자는 “당시 산림을 훼손하는 현장을 목격해 신고했어야 하는데 이후 주민들의 구두 증언인 데다 이미 산림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이를 확인해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비오톱 등급이 낮춰지자 개발업체는 2014년 6월 이곳에 빌라 24가구를 짓겠다며 개발행위 허가를 신청했다. 그해 도시계획심사위원들은 “해당 부지 옆에 수려한 공원이 있으며 바로 옆에 학교도 있다”, “차라리 구청에서 임야를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주민을 위해 바람직하다”, “이곳을 개발하면 인접토지도 개발하게 된다. 특혜 시비에 논란이 될 지역이다”라는 등의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만장일치로 부결돼 5년 동안 재상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업체는 이에 반발해 그해 9월 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시는 “토지는 가장자리로 녹지축이 단절되지 않고, 녹지로 보전해 쾌적한 환경 조성의 공익보다는 재산권의 제한으로 인한 청구인의 불이익이 크다”며 개발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구청은 올해 2월 절차에 따라 2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북측 기존 산책로를 기부채납 받고 경관 보호를 위해 수림대를 조성할 것” 등을 단서로 결국 개발행위를 허가했다.
개발행위 허가 과정에서 해당 부지는 도로와 접한 부분이 적어 허가가 날 수 없었다. 그런데 개발업체는 자신들의 부지와 맞닿은 서연중학교 옹벽이 개발업체의 땅 14㎡(약 4.2평)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빌미로 업체는 학교 측에 자신들의 허가를 위한 학교용지 21㎡(약 3.3평)와 맞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개발업체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주고 학생들은 산사태 위험에 내몰린다”며 강력 반대했다. 학부모와 주민 140명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으며 현재 이 맞교환 건은 측량만 마친 채로 중단된 상태다. I사 관계자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 개발행위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 중이다. 개발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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