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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추리소설 쓰는 인천지법 도진기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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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4 19:35:21 수정 : 2015-09-14 14: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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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스 같은 한국 캐릭터 만들고 싶어” ‘나중에 정식으로 상속한다 해도 세금을 두 번이나 떼야 할 테고 말이야. 어디 보자, 한 5억이면 되겠어. 영원히 침묵해주지.’ (소설 ‘순서의 문제’에서)

‘민사소송의 구조상 원고 측에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가 자살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살의 의심만 강력히 부각시키면 된다.’ (소설 ‘선택’에서 발췌)

낭자한 선혈, 어지러진 방, 미궁에 빠진 사건…. 여느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들이 그의 작품에도 등장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는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법의 허점을 콕 짚어내 사건을 구성한 뒤 다시 법을 작동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 속 트릭이 예사롭지 않다. 추리소설을 쓰는 인천지방법원 도진기(48·연수원 26기) 부장판사의 얘기다.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판사는 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4일 인천시 남구 인천지방법원에서 그를 만났다.

회색 정장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낀 그는 전형적인 판사 스타일이다. 기자가 소설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도 부장판사는 2010년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이후 ‘판사 겸 추리소설 작가’라는 드문 길을 걸어왔다.

“‘명탐정 홈스’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이 외국의 쟁쟁한 추리소설 캐릭터에 맞설 한국산 탐정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문득 ‘일본 미스터리’라는 브랜드만 달면 함량 미달의 작품도 팔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우리나라에도 독보적인 탐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나올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직접 추리소설을 써 보자고 마음 먹자 그의 머릿속에서는 소재가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왔다.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과 무협지를 많이 읽은 덕분인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내고 있는 작품도 그때 구상했던 것들이 많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범생으로 살았는데, 머릿속에서는 ‘나쁜 놈을 보면 박살 내고 싶다’는 대중의 감성과 느낌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꿈은 그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 소설 ‘어둠의 변호사’에 등장하는 고진 변호사는 도덕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빈집에 잠입하거나, 주요 증인의 증언을 코치해주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그의 구상은 위법, 탈법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아무래도 형사재판부를 경험했으니까 매일 보는 게 수사와 재판 기록이었죠. 법정 테두리 밖의 일반 작가들보다는 별 다른 취재 없이도 (작품 소재나 아이디어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판사로서 접한 사건은 작품에 다루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구현되는 ‘정의’가 현실에선 좌절되기 일쑤다. 최근 발표된 조사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법 불신도’가 꼴찌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정의’가 진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우리(사법부)가 하는 것은 ‘법치’여서 사람들이 원하는 ‘정의’와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즉, 판사와 재판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시스템’이어서 항상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의’에 부합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과거 간통죄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규정했다. 작가든 뭐든 예술가의 싹을 지닌 채 태어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성향이어서 국가권력이 중구난방으로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이혼소송도 이제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판사와 작가 모두 보통 사람은 어느 하나도 힘에 부칠 텐데 그는 ‘투잡’을 뛰고 있다. 그는 어떤 판사,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을까.

“보통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분통 터지는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보다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보통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다른 입장을 생각해 보거나 당사자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욕심이라면, 제가 만든 캐릭터와 작품이 영상화돼서 더욱 많은 사람이 봐주고, ‘한국 추리소설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는 것뿐입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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