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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유 없다"는 난민 父…마음 돌린 英, 시리아 난민 수용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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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4 10:05:30 수정 : 2015-09-04 13: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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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해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인 꼬마 아버지가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이런 가운데 굳게 닫혔던 영국 정부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루 만에 난민열차 운행이 중단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은 노숙촌으로 변했으며, 나흘 간격으로 태어난 여자아기들이 그나마 작은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 “저는 살 이유가 없어요”…바다에서 가족 잃은 아버지의 슬픔

지난 2일(현지시간) 터키 보드룸의 한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인 3살 남자아이 사진이 세계를 분노케 한 가운데 아이 아버지가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가족들과 스웨덴으로 향하려다 찬 바다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었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꿈꿨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빼고는 원하는 게 없습니다.”

우느라 지친 압둘라 쿠르디는 말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3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땅에 묻고, 나도 죽을 때까지 그 곁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다마스쿠스 출신 쿠르디는 내전이 심해지자 터키로 넘어와 유럽이나 캐나다로의 이주를 시도했다. 전에도 두 차례나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그리스 코스 섬까지 가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이 세 번째 밀입국 시도였지만, 쿠르디는 찬 바다에서 아일란(3)과 갈립(5) 그리고 아내를 잃었다.

쿠르디 가족이 탄 보트에는 총 12명이 올랐다. 브로커는 보트상태를 걱정하는 쿠르디에게 “괜찮다”고 말했으나, 출발 5분 후 거센 파도에 보트가 휘청대자 혼자 바다로 뛰어들더니 해안으로 도망쳤다.

흔들리는 배로 정신없는 사이 쿠르디의 아내와 아이들은 바다에 빠졌다. 캄캄한 밤, 불빛에 의지해 홀로 헤엄친 쿠르디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안으로 갔지만 가족들을 볼 수 없었고, 시내 어디에서도 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쿠르디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향한 병원에서 비보를 접했다.



가족을 잃은 쿠르디는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 총알이 쏟아지는 시리아를 떠나 스웨덴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꿨던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 곁에 앉아 죽을 때까지 쿠란을 읽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굳게 닫혔던 英 정부, 마음 돌려 시리아 난민 수용방침

‘아버지’로서 시리아 꼬마의 죽음을 슬퍼했던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수천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일 전망이다.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캐머런 총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쇄도한 ‘난민 수용’ 요구에 결국 굴복했다.



영국 가디언 등 현지 매체들은 그동안 난민 수용을 거부해온 정부가 조만간 시리아 난민 수천명을 받아들인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캐머런 총리가 국내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을 돌려 며칠 안으로 난민수용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캐머런 총리는 “난민을 더 받아들인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꼬마의 사진을 계기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나오자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아일란 쿠르디(3)는 최근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한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터키 현지 매체들이 찍어 공개한 쿠르디의 사진은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온라인상에서 퍼졌으며, 이를 본 전 세계는 무엇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갔느냐며 크게 분노했다.

영국 현지 매체들은 캐머런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BBC는 “유엔 난민기구와의 협력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데려오는 프로그램이 선택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가디언은 한술 더떠 “총리가 이 프로그램으로 난민 수천명을 데려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와 영국 무슬림위원회의 난민받기 서명운동에는 각각 10만명, 20만명가량이 참여했다.

◆ 멈춰버린 난민열차…노숙촌 된 헝가리 켈레티 역

서유럽행 난민열차가 멈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은 난민촌으로 변했다. 지난달 31일, 서유럽으로의 망명을 방조했던 헝가리 정부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꿔 여권과 비자를 소지한 이민자에게만 열차탑승을 허용한 이후, 난민들의 열차 탑승이 중단된 상태다.

역 전광판에는 “부다페스트 발(發) 서유럽행 열차는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운행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이를 본 난민들이 역사 곳곳에 드러누우면서 순식간에 노숙촌이 됐다.

사흘 만에 한 차례 열차가 출발했지만 목적지는 서유럽이 아닌 난민캠프였다. 게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1시간 거리인 비츠케 역에서 정차했다. 영문을 모른 난민들은 자신들을 끌어내려는 경찰과 충돌했으며, 난민캠프로 가는 기차라는 사실을 몰랐던 이들은 “노 캠프”라고 외치며 하차를 거부했다.

분노한 한 남성은 아내와 자녀를 선로에 던진 뒤 자해하다 경찰에 체포되는 등 현장은 자유를 갈망하는 난민들의 바람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압박으로 뒤엉킨 상태다.

한편 켈레티 역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잇따라 태어나 작은 빛이 되어주고 있다. 나흘 간격으로 태어난 두 여아의 이름은 각각 사단과 셈스이며, 이는 시리아어로 쉼터(shelter)와 희망(hope)을 의미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BBC·텔레그래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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