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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세상 바꾼 2박3일’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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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3 20:30:48 수정 : 2015-09-03 17: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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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 움직이는 크고 단단한 지렛대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전승절에 그린 지도, 제대로 읽고 대응해야
지도 제작자는 자연·문화 경관 요소 등을 담아 지도를 만든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장인들은 진흙으로 강과 들판을 표시하고 그것을 말려 점토판 지도로 삼았다. 현대 전문가들은 지리정보시스템(GIS)까지 활용해 지도를 다듬는다. 제작 기법은 시대마다 달라도 본질은 똑같다. 인간에게 유용한 공간 정보를 어찌 올바르게 담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국가 지도자도 지도를 만든다.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는 제작자와 달리 새 지도에 관한 정보 자체를 생산하는 입장이다. 미국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는 ‘왜 지금 지리학인가’에서 “1990년부터 99년까지 유엔은 32개국을 회원국 명단에 새로 추가했다”고 했다. 20세기 양차 대전 이후 국제 질서가 정돈된 것 같지만 세계 전도는 계속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가 지도자는 어깨가 한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지도를 바꾸는 것은 무력 수단만이 아니다. 외교 역량도 작용한다. 1972년 미·중 관계개선을 이룬 미국의 리처드 닉슨, 헨리 키신저와 중국의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가 바로 그렇게 세상을 바꿨다. 양국은 구 소련을 포위하는 전략적 구도를 마련했고, 그 여파에 둔감했던 구 소련은 20년도 안 돼 붕괴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올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봤다. 시 주석은 때론 박 대통령을, 때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최우선 배려하면서 극진히 예우했다. 한·중 정상은 전날 회담과 오찬을 갖기도 했다. 한·중 관계를 나타내는 무형의 지도가 다시 그려진 것으로 봐도 큰 무리가 아니다.

지도 정보를 온전히 파악하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등고선은 같은 높이에 위치한 점을 연결한 선이다. 등고선이 빽빽하면 경사가 급하고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경사가 완만하다. 독해력이 없다면 양질의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밝은 눈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제 관계를 담은 무형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새 지도를 읽는 혜안이 없어 국가적 재앙을 맞은 구 소련은 다시 없는 반면교사다.

박 대통령 방중을 닉슨의 72년 방중과 수평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번 방중의 가치를 낮춰볼 이유는 없다. 동북아 지정학 재편 가능성마저 엿보인 것 아닌가.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말보다 행동으로 반겼다. 한·중 양국이 경제도 정치도 뜨거운 정열경열(政熱經熱) 단계로 나아갈지는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북한 위험 관리 측면에선 매우 굵직한 무형의 등고선이 확보된 것만은 틀림없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크고 단단한 지렛대다. 북한이 ‘한반도 전시상태’를 선언했던 2013년 상반기를 되돌아보자. 북한은 1월부터 ‘비핵화 공약 완전 폐기’ 등을 외쳤다. 2월12일 3차 핵실험도 감행했다. 3월에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을 골자로 하는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북한이 양처럼 변한 것은 몇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심지어 국방위원회는 6월15일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책적 과제”라는 중대담화를 냈다. 왜 그랬을까. 3월 집권한 시 주석의 중국이 강력히 압박했기 때문이다. 최근 긴장국면에서 중국이 한 역할도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도 그제 긍정 언급했다. 잘한 일이다. 중국이 생각을 바꾸면 남북관계가 생각보다 순조롭게 풀릴 수도 있다. 그런 방향으로 새 지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방중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닉슨은 72년 2월27일 ‘핑퐁 외교’를 마무리짓는 상하이 연회에서 “우리는 여기에 1주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꾼 1주일이었습니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찌해야 박 대통령의 2박3일 방중이 ‘세상을 바꾼 2박3일’이 될 수 있을지 깊이 성찰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급선무는 새로 나온 무형의 지도를 제대로 읽는 일이다. 새 지도의 지형지물을 손금처럼 읽어야 새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다. 혜안과 각성이 필요하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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