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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킴(CI KIM)의 여덟 번째 개인전〈The Road is Long>

입력 : 2015-09-01 13:54:13 수정 : 2015-09-01 13: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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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리오갤러리는 씨킴(CI KIM)의 여덟 번째 개인전〈The Road is Long>을 1일부터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개최한다.

지난 2013년 개인전 이후 전시를 준비하는 2년 여의 기간 동안 사업가이자 컬렉터이기도 한 작가 씨킴은 서울과 제주도에 총 5개의 뮤지엄을 오픈했다. 모든 뮤지엄이 기존에 있던 건물을 용도에 맞게 개축되었다. 낡은 건물의 내벽과 외벽을 뜯어내어 건물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뮤지엄 건물은 콘크리트로 마감한 거친 벽에 작품을 설치해 오직 작품만이 강조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뮤지엄 건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시멘트와 콘크리트, 흙과 나무 등 건축재료의 속성을 자연스레 이해하며 가까워졌다.

 이번 전시는 재료 본래의 특성을 다룬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나무 패널을 이용한 연작 <무제(2015)>에서 작가는 작품을 물, 공기, 햇볕과 같은 자연의 요소에 그대로 노출되도록 하였다. 나무 패널들은 오랜 시간 자연의 요소에 의해 단련되고 변화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들에 핀 작은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인공미를 압도하고,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를 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시간과 인내의 중요성, 이러한 철학이 약 1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재료 그대로 제시된 나무, 철, 부표는 '만든다'는 개념이 아닌 사물을 '관찰'하고 '발견'하는데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은 긴 시간을 관통하면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로써 처음과 현재가 다른 지점이 하나의 길로써 그대로 드러난다.

 시멘트를 사용한 작품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물감이 아닌 캔버스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재, 예를 들면 물감에 젖은 휴지, 철가루, 토마토 등을 캔버스에 조합하여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다양한 소재를 실험한 결과, 현재는 어떠한 색과 첨가물도 포함하지 않은 무채색의 시멘트 재료가 무(無)의 색을 보여준다. 깨끗한 캔버스에 시멘트를 던지고 마르기를 기다린 후 문질러서 형태를 낸다. 젖은 재료가 말라서 정착되는 과정의 변화, 가루였던 재료가 캔버스에 얹혀서 어떤 구상적인 무언가를 연상하게 하는 효과 등은 작가의 조율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시장 4층에서는 씨킴의 전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감통, 부표, 쇼핑백과 같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오브제들이 전시된다. 하지만 이 오브제들은 관람객이 손으로 만져보기 전까지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도록 실제 색, 질감, 양감을 살린 청동 조각이다.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는 사물의 외양, 즉 눈에 보이는 형상의 한계를 보여준다. 나아가 작가는 전시장에서 관람자들이 익숙한 사물인 듯 지나치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의 본성을 어디까지 알고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실제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우리에게 전달하는 진실은 한계가 있다. 같은 듯 다른 것, 다른 듯 같은 것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실제와 복제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작가는 다름이라는 것은 다른(Different) 것이 아니라 구별되는(Distinguished) 것이고, 이러한 구별은 보는 자와 보는 대상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 작품과 함께 십여 년 전 작가가 출장 중 찍은 사진들이 전시장 한 쪽을 차지한다. 오래 전 잦은 해외 출장에서 작가가 만난 생경한 풍경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낯선 유럽의 길에서 만난 이정표의 텍스트, 오래된 건물 벽, 바닥의 이미지들의 조합과 구성이 현재 그가 만든 뮤지엄의 설치, 시설, 건물의 외관과 내관들을 상상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십여 년간 작업실에 머무르며 수 많은 작품들이 거쳐간 카페트는 현재 또다른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십여년의 작업과정이 그대로 쌓여 또하나의 작업이 된 것이다. 과거는 작가의 현재에 꾾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영감으로 작용한다.

 비틀즈의 노래 <The long and winding road>에서 가져온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작가의 인생에 있어 작품 활동은 미술이라는 긴 길을 지나는 여행이다. 지난 해와 올해 뮤지엄을 통해 비로소 꿈을 화려하게 이룬 자로 비춰질 수 있는 시점에서, 그는 다시 자신만의 작업으로 되돌아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어떻듯 지금 이 순간은 또다시 먼 여정의 중간지점일 뿐이다. 길은 길고,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갈 뿐이다. 끝없는 여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현재 모습을 직시하며, 미래에 또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다시 한번 여정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전시를 통하여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9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며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들과 함께 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마련하여 작가와 함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천안=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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