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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밤의 선생’ 문학평론가 황현산

입력 : 2015-08-31 21:10:28 수정 : 2015-08-31 23: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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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 … 까칠한 문장과 사유도 어둠의 선물” 평론가의 문장이 아름답기는 쉽지 않다. 한글로 흘러가는 문장인데도 주어 서술어 따져가며 밑줄을 긋고 사전까지 들춰야 겨우 감을 잡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소화도 잘 되지 않은 서구 이론을 앞세워 번역투 문장으로 문학의 권위만을 강변하는 문장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황현산(70·고려대 명예교수)의 문장과 사유는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까. 연전에 나온 그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는 출간 2년 만에 18쇄를 찍었고 4만 부 가까이 팔려 나갔다. 통상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한 칼럼들을 묶어 체면치레에 그치는 책들은 많아도 독자에게 이처럼 순수하게 각광받은 칼럼집은 드물다. 영화판에 비유하자면 가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책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6·25가 나던 해 신안군 비금도로 피난 들어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7년 만에 목포로 나왔습니다. 내 생애 10분의 1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그때 배운 것들이 기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조선 중기의 말까지 살아 있었지요. 후일 내가 배운 프랑스어는 라틴어의 뿌리가 순수하게 살아 있는 세계 표준어에 해당합니다. 나는 이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면서 정확하게 쓰는 훈련을 한 셈입니다. 내 글은 미문이라기보다 까칠한 편입니다.”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암 투병 중에도 오래 공들여 번역한 ‘보들레르 산문시집’을 최근 펴냈다. 그는 “한국 문인들은 시는 잘 쓰는데 서사 능력은 부족한 것 같다”며 “끝까지 강인하게 밀어붙이는 소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은 노년에도 트위터를 누리는 디지털 마인드가 남다르다. 트위터의 세계에서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서울 정릉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까칠한 언어’야말로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어로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가 젊은이들과 트위터에서 어울리는 힘이 까칠한 문장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어느 순간 그가 읽는 책들은 저자가 죽었건 살아 있건 자신보다 젊은 필자들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20대에 열정적으로 썼던 요절 시인 랭보(1854∼1891)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쓴 글이라도 책으로 나오면 보편적 사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면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젊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건 많건 간에 책에 담겼다고 모두 보편타당한 건 아닐 터이다. 신경숙 표절 파문으로 여름 내내 시끄러웠고 최근에서 그 진앙인 ‘창비’에서 “의도적인 베껴쓰기로 볼 수 없다”고 신경숙을 두둔하면서 다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이즈음이다.

“신경숙은 시장성이 큰 대중작가인데 문학이 원래 지니고 있는 아우라나 카리스마를 대중성과 굉장히 잘 연결시킨 거지요. 신경숙뿐 아니라 몇몇 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성과 시장에서의 성공을 비평가들이 바꿔치기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학권력을 통해서만 그리된 게 아니라 신경숙을 좋아한 일반 대중도 신경숙을 열심히 따라 읽었기 때문에 신경숙이 특별히 문학적 가치가 있기를 바란 겁니다. 그 점에서 문학판과 공모한 독자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황현산은 “글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연히 같은 것인지 아니면 베껴 쓴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면서 “의도적이냐 아니냐는 참 묘한 말인데 아무튼 그것을 읽었기 때문에 그 표현이 나왔다면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신경숙 파문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국 사회가 좀 더 합리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면서 “험난한 현대사를 통과해온 탓인지 한쪽으로 기울어 시기, 질투, 의심 이런 것들 때문에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여기에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뿌리 뽑힌 삶의 원형, 그 상실감이 주는 상처도 굉장히 크다”고 언급했다.

그는 올봄 두 달 가까이 트위터를 쉰 적이 있다. 담도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한 달 반 가까이 입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를 팔로어하는 트위터리안들에게는 그냥 “일이 있어서 쉰다”고만 공지했다. 10월까지 항암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그는 목소리에 힘이 없고 피로한 낯빛이었지만 차분하게 정감 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민하고 있을 때 한숨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거라고들 말하지요. 밤이 좋은 생각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의 프랑스 속담이 있는데 ‘밤이 선생’이라고 웃자고 말했다가 책 제목으로 쓰게 됐습니다. 밤에 작업을 하면 무의식이 작동해서 낮에 생각한 것과 많이 다릅니다. 밤을 새워 읽고 쓰다가 새벽 5시쯤 잠이 드는 생활을 오래 해왔는데 수술을 받고 난 다음부터는 패턴이 무너져서 이것저것도 아닙니다.”

황현산의 적확한 문장과 깊은 사유가 일차적인 공신이겠지만, ‘밤이 선생이다’라는 제목이야말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데 만만치 않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고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라고 썼다. 젊은 시절부터 황현산과 밤의 인연은 깊었다. 그는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처음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이다. 고려대 불문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거니와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박사논문 심사교수였다. 김현의 주선으로 박사학위논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황현산은 진도 출신 김현의 다도해 정서와 1950∼60년대 목포 분위기를 공유했다. 그의 문체와 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김현과 닮았다는 평을 듣는 배경이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대학시절부터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생계의 무게 때문에 대학원조차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다녀야 했다. 낮의 노동에서 복귀해 아무리 피로해도 밤에는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패턴이 밤을 선생으로 삼게 된 내력이다. 45세에 문화예술진흥위에서 청탁한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이 호평을 받으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해 자연스레 문학평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추천이나 등단 과정을 거친 게 아니라 비록 늦깎이이지만 순수하게 그의 글이 지니는 힘만으로 세상에 드러난 셈이다. 이후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해외유학파들은 일찍이 화려한 문단 앞자리를 장식했지만 그는 정작 70세 가까이 되어 어떤 문학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독자들로부터 월계관을 받은 셈이다. 오랜 세월 더불어 지낸 밤의 선물이다.

황현산은 최근 트위터에 유머 시리즈와 무협지 이야기를 올렸다. 그가 ‘난다 긴다’ 하는 여성 트위터리안들이 모두 소녀시절 ‘빨강머리 앤’을 읽었다는 사실을 놀라워하면서 자신은 고교시절 무협지를 쌓아 놓고 읽었노라고 썼다. 일찍이 한국 문단의 특정 ‘문파’에 편입되지 않았던 그는 “강호에 나가 활약하지는 않지만 은거한 곳에 인재가 찾아오면 한마디 충고할 수 있는 처지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암 투병의 곤고함을 스스로 이기기 위한 농담들이냐고 물었다.

“원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여기가 끝이라면, 여기까지 왔다는 비석 하나는 세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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