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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25 전쟁영웅' 윌리엄 해밀턴 쇼 美 해군 대위 선정

입력 : 2015-08-31 09:51:47 수정 : 2015-08-31 10: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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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31일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미 해군 대위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난 쇼 대위는 평양에서 고교 과정까지 마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췄으며 한국인 친구들도 많았다.

미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미 군정청 소속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쇼 대위는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작전 후에는 자원해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돼 서울탈환작전에 직접 참전했다.

1950년 9월22일 적 후방 정찰을 위해 녹번리(현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적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28세의 나이에 전사했다. 그가 전사하고 1주일 후 유엔군은 서울 탈환에 성공했다.

전사하기 1주일 전 쇼 대위는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던 이성호 해군 중령(후에 제5대 해군참모총장 역임)에게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이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냐.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2010년에는 서울시 은평구 평화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쇼 대위는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 미국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이 각각 추서됐다. 올해 6월 호국영웅 우표 인물로도 선정돼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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