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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생 2막’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시작하겠다며 타슈켄트로 떠난 선배가 있다. 정년과 함께 인생 1막을 마친 선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할 때만 해도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하지만 출발 직전 만난 선배는 달라져 있었다. “계약 기간은 1년이지만 그곳에서 뿌리를 내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식 외교관은 아니지만 정부의 녹을 받고 가는 만큼 뼈를 묻을 각오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민간 외교관 하면 과거엔 조종사와 승무원, 태권도 사범, 선교사, 언론사 특파원, 기업 주재원 등을 일컬었다. 하지만 요즘엔 K-팝 가수를 비롯한 한류스타, 국위를 선양하는 운동선수는 물론 국내에서 외국인을 자주 대하는 택시·관광버스 기사와 호텔·게스트하우스 관계자, 국제행사 도우미도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연초 언론에 소개된 80세의 인천국제공항 자원봉사자 윤영씨도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애국자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다. 10월2일 폐막식 직후 데아크 가블 헝가리 체육장관과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 소련선수단장이 각각 서울 한남동에서 초대를 받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겸 대한레슬링연맹 회장과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부른 것이다. 이 두 모임이 첫 동구공산권 외교관계 수립인 한·헝가리 수교와 동서 냉전의 한 축을 무너뜨린 한·소 수교의 밀알이 됐다.

야신 단장이 축구에서 딴 금메달을 선물하자 문 총재는 “내가 자동차 2000대를 선수들을 위해서 기부할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야신 단장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전화로 알렸고, 문 총재는 “단 한국 운전사가 북한 삼팔선을 거쳐 가야 한다”고 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길을 빌려 주지 않겠다고 해서 자동차 기증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 후 잇따라 열린 한·소 정상회담과 한·소 수교,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단초였다.

2년 후 문 총재는 한류 원조인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앞세워 세계언론인회의를 모스크바에서 개최했다. 고르바초프를 만난 문 총재는 소연방 해체와 세계적화전략 포기, 레닌 동상 철거를 주장하며 소련 젊은이 3000명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겠다고 제안했다. 약속은 지켜졌고, 소련은 모순투성이인 공산주의 체제를 스스로 해체했다. 한 민간 외교관의 힘이자 업적이다. 거인의 성화(聖和) 3주년이 의미 있는 이유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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