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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영화 ‘베테랑’ 1000만 관객과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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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30 21:09:13 수정 : 2015-08-30 23: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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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이 지난 29일 역대 국내 개봉영화로는 17번째로 ‘1000만 관객’ 반열에 올랐다. 영화를 본 사람이 1000만명이 넘었으니, 이쯤에서 스포일러 우려없이 이 영화의 흥행 이유를 뜯어볼 수 있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경찰 광역수사대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가 집요하게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의 범죄 행위를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를 빠른 화면 전환과 속도감, 적당한 자극과 유머 코드로 잘 포장했고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흥행몰이를 했다. 그러나 영화를 1000만 관객까지 이끌고 간 힘이 ‘2015년 대한민국 재벌’들에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진수 사회2부 기자
영화의 시작은 서 형사가 조태오를 만나 “재벌은 좀 다르게 놀 줄 알았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된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일반시민들이 막연하게 가진 재벌의 ‘특별함’에 대한 기대다. 기대는 곧 무너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거창한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런 극악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나오는 재벌의 모습은 대한민국 재벌이 이미 보여줬던 것들이다. 영화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근로자는 조태오의 집무실로 불려가 하청업체 소장에게 두들겨 맞고 ‘대전료’ 개념으로 420만원의 체불임금을 받게 된다. 2010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자 물류업체 M&M의 전 대표인 최철원씨의 ‘2000만원 맷값 폭행’이 영화 속으로 들어온 셈이다. 근로자는 대표에게 따지다가 쓰러졌고, 재벌은 일이 커지지 않게 사건을 근로자의 자살로 위장한다. 사장과 임원, 경호원 등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사건 축소와 증거 인멸에 나선다. 그중에는 경찰도, 기자도 포함됐다. 2007년을 발칵 뒤집었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을 떠올리게 한다.

조태오가 “어이가 없네”라고 되뇌며 폭행과 살인 교사를 하는 장면은 최근 발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어이없는 ‘땅콩회항’을 떠올리게 한다. 알짜 기업을 배다른 형제에게 줄 수 없다는 등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행태는 한국 재벌의 고질적 병폐다.

조태오가 약에 취해 도주를 벌이는 장면은 한 중견업체 대표의 ‘벤틀리 질주’와 겹쳐진다. 10대, 30대 재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젠 속된 말로 ‘돈 좀 벌면’ 기업가들도 이렇게 변질되는 셈이다.

명동대로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길 정도로 만천하에 드러나야 재벌이 체포될 수 있다는 점도 현실과 닮았다.

업계에서는 반재벌 정서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영화가 왜곡된 재벌의 모습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다. 영화 관계자들은 1000만 영화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애국심 고취’, ‘사극 열풍’, ‘복고 유행’ 등 시대를 관통하는 바람이 영화계의 1000만 관객 돌풍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명량’, ‘태극기 휘날리며’, ‘변호인’, ‘국제시장’ 등이 그랬다. 같은 맥락에서 재벌들이 그동안 쌓은 이미지가 결국 바람이 돼 ‘베테랑’이라는 돛단배의 순풍 역할을 한 셈이다.

감독이 촌스럽게 서 형사의 입을 빌려 반복한 대사가 재벌에 마지막 답이 된다. “죄는 짓고 살지 말라”고. 

정진수 사회2부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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