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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켠 아련한 기억… 다섯 빛깔 사랑 이야기

입력 : 2015-08-27 20:40:59 수정 : 2015-08-27 20: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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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가 5명 ‘로망 컬렉션’ 선봬 사랑 이야기에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이들도 있을 터이다. 사랑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 찌들 대로 찌든 일상의 피로가 그 사랑마저 깊숙한 곳으로 밀어내버린 상황일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뛰는 청춘도 여전하다. 이 싱싱한 청춘들조차 이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제 앞길 헤쳐 나가느라 사랑 따위는 뒷전으로 밀쳐 두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다. 지친 이들이건 가슴이 뛰는 이들이건 그들 가슴 한켠에 묻어둔 따스한 사랑에 대한 갈망까지 부인하기는 힘들다.

로맨스 소설을 펴낸 작가들(왼쪽부터 하창수 박정윤 김서진 전아리 한차현). 이들이 그린 로맨스는 가벼운 문법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내용과 형식으로 다양한 빛깔을 빚어낸다.
깊은 곳에 감춰둔 그 감정을 자극하는 다섯 가지 빛깔의 사랑 이야기가 출간됐다. 로맨스 소설을 묶는 ‘로망 컬렉션’(Roman Collection) 시리즈를 표방하며 ‘나무옆의자’에서 1차분으로 출간한 ‘봄을 잃다’(하창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한차현) ‘연애독본’(박정윤) ‘네이처 보이’(김서진) ‘미인도’( 전아리) 등 5권이 그것이다. 기존 로맨스 소설 문법을 전혀 곁눈질하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마음 가는 대로 써보라고 청탁해 얻어낸 결실이다. 200자 원고지 500장 안팎 분량으로 한나절이면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경장편이다. 50대 후반 남성 작가의 묵직한 존재론적 사랑 이야기에서부터 아직 20대인 젊은 여성 작가의 환상적인 사랑도 있다.

등단 30년을 목전에 둔 중견작가 하창수(55)는 어렵사리 다시 찾은 사랑을 잃고 방황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봄을 잃다’에 담아냈다. 그는 “사회성 짙은 소설들도 결국 그 뼈대는 사랑 이야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이 소설의 탈고는 아마도 더 오랜 시간 뒤로 미뤄졌을 것”이라며 “소설 속 중년 남자가 발견한 것이 만약 ‘그 자신’이었다면, 그는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라고 썼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의 품격에 대해 묻는 진중한 성찰이 인상적이다.

한차현(45)의 상상력은 경쾌하다. 그는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에서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가까워질수록 신비한 여인 N은 그동안 남자가 만났던 연인들의 장점만을 고루 취한 환상적인 파트너다. 그가 “잠깐 달고 오래 짠 것이 사랑”이라고 예감했듯이 그 여인은 어느날 사라지고 만다. 나중에 드러나는 그네의 정체는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주기적으로 기억만을 백업해 다른 생체에 이전해야 하는 존재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흥미로운 설정으로 묻는 작품이다. 

박정윤(44)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여학생 3명의 ‘첫 경험’을 따라가는 발칙한 ‘연애독본’을 썼다. 70여년 전 일제강점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한 여학생들은 ‘소녀구락부’를 만들어 ‘딴스홀’과 ‘데파트’를 드나들며 연애를 꿈꾼다. 글재주가 있는 아란이라는 여학생이 친구들의 경험을 각색해 ‘연애독본’을 써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이 출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가꾼다. 신여성 나혜석(1896∼1948)에 관한 소설을 5년 동안 붙들고 있다가 탈고한 후 그 시절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인 만큼 당대의 풍속이 세밀하게 살아서 이야기의 흥취를 돋우는 강점을 지녔다.

방송작가 출신 김서진의 ‘네이처 보이’는 36살 여성 아나운서가 마법사를 자처하는 27살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김씨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을 때 신참 방송작가 시절에 내 의도대로 쓰지 못했던 것을 바로잡아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전아리(29)의 ‘미인도’(美人島)는 여인들이 사는 환상적인 섬을 무대로 전개된다. 그 공간에 들어선 남자는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나눌 수는 있지만, 감수해야 할 대가가 크다. 여인과 합궁을 하게 되면 그곳의 일은 잊은 채 현실로 돌아가야 하고, 잊지 못한다면 그곳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 순식간에 늙어버린다. 성적 능력을 상실한 채 소경이 되어 여인 곁에 머물 수는 있다. 여자라고 대가가 따르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랑의 숙명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젊은 작가의 패기가 만만치 않다. 시리즈 2차분은 문형렬 김도연 박상 서진연 이명랑 등이 준비하는 중이다.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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