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대리 정상회담' 통한 기싸움…급박했던 무박 4일

입력 : 2015-08-25 02:49:11 수정 : 2015-08-25 02:51: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김관진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타결된 25일 새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왼쪽 두번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남북고위급 접촉이 25일 새벽 0시 55분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일촉즉발 상황이었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일단 해소 국면으로 들어가고, 대화와 협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군사적 충돌 위기 상황에서 극적 반전이 이뤄지면서 박근혜정부 남북관계에 있어 획기적인 개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양측 대표단은 지난 22일 오후 6시30분 첫 접촉을 시작해 다음 날인 23일 새벽 4시15분까지 ‘무박 2일’ 협상을 벌였다. 또 전날 오후 3시30분 2차 접촉을 재개해 이날 자정을 넘겨 협상을 계속했다. 2차 접촉은 사흘 연속 날밤을 새며 1차 접촉 때의 ‘무박 2일’을 넘어 ‘무박3일’이라는 초유의 마라톤 협상 기록을 남겼다. 이는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양측 의욕이 높기도 하지만 의견 차도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남북 공히 수용 어려운 협상 원칙

남북 대표단은 모두 협상 마지노선으로 내세운 원칙과 기준 탓에 공히 양보하기 어려운 처지다. 우리 측 요구는 분명하다. 북측이 목함지뢰·포격 도발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중단을 우선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뢰·포격 도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과와 재발 방지에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 동북아 정세와 북한 내부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이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협상장을 박차고 일어나기도 어렵다. 이번 사태 후 비무장지대(DMZ) 일대 양측 군사전력이 증강되고 있다. 6·25전쟁 이후 ‘최대 대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고위급 접촉을 통한 이번 담판이 성과 없이 끝난다면 그 후폭풍으로 남북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측 대표단이 설전과 고성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끝내 협상장을 지킨 데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남북관계 현안 전반에 대해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것도 마라톤 회담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북한은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우리 측은 5·24조치 해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문서상 재발 방지 약속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북측은 5·24조치 해제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것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한때 남북 대표단은 합의문 문구 조정까지 들어가는 등 타결 직전까지 협상이 진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구 수위 조정을 놓고 북한이 마지막 강경 태도로 돌아서면서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밤새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 ‘대리 정상회담’ 통한 기싸움

양측 대표단이 어렵사리 큰 틀의 협상을 타결해도 합의안 문구 조정이 만만찮은 작업이어서 더욱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남북 대표가 각각 서울·평양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도 타결 지연의 배경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모두 협상 상황을 보고받으며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 카메라가 설치돼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회담 상황은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으로 실시간 전달되고 종합적 판단과 분석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되면 박 대통령이 또다시 협상팀에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도 마찬가지다. 김 제1위원장이 수시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에게 지침을 내리면서 회담이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협상장에서의 상황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양측 대표들이 본국 훈령을 받으며 대기하는 시간도 자주 있을 것”이라며 “특히 김 제1위원장 지시를 받고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회담 중 북한 대표단이 정회를 요청하고 4시간 이상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져 평양의 지침을 듣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협상이 지리하게 진행되자 절충점을 찾기 위해 양측 대표인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이 배석자 없이 1대1 비공개 대화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측 대표단이 체력적인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대표인 김 실장은 1949년생으로 환갑을 훨씬 넘긴 66세이며, 올해 51세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 대표단은 협상장 주변에서 정회시간을 이용해 소파 등에서 틈틈이 ‘쪽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남북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북의 지뢰도발 사과와 재발방지 노력 약속은 의미 있는 일”

남북고위급 접촉 우리 측 수석 대표인 청와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25일 새벽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접촉을 통해 북한의 도발 재발 방지 및 관계 개선 계기를 마련했고,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이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형성해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확성기 방송 중단을 거부하고 일관되게 협상한 결과, 북한은 (그동안) 위기를 조성해 양보를 받아 왔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접경지역 주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협상이 늦어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협상이 대단히 길어졌고, 입장 관계가 좁혀지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답했다. 또 “재발 방지가 되지 않으면 또 도발이 생기고, 악순환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했고, 북한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 시키도록 요구했다”며 “재발 방지와 연계해 조건을 붙여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그러나 정상회담 논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또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사안을 묻는 질문에도 “해당 기관과 담당 기관에서 밝힐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기본틀을 마련했다고 보면 된다”고 간략하게 답변했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