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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맨드라미를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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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24 21:28:59 수정 : 2015-08-24 2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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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도 꿋꿋… 장군 같은 붉은 기개
조국 위해 피 흘린 선열들 기억하라
처서를 지나면서 확실히 가을이다. 언제 봄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번 여름은 너무 무더워 곳곳에서 덥다는 비명을 지르다가 전력 예비율 걱정 없다는 소리에 에어컨 팡팡 틀고 지낸 기억만 남아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이 여름을 지나려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꽃이 있다. 시골의 담벼락이나 울안, 사립문 부근에 많이 피는 맨드라미다.

맨드라미처럼 더운 꽃도 없다. 제 키의 반이 닭 볏처럼 생긴 꽃이다. 무겁게 꽃을 이고 있거니와 그 빛깔도 걸쭉한 붉은빛이니 덥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를 아름답다고 보기보다는 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봄에 파종을 하면 7∼8월에 가장 꽃이 활짝 피고 때로는 늦가을까지 가는 맨드라미, 다른 꽃처럼 꽃잎이 정돈된,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어서 누구한테도 예쁘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을 이 꽃은 그래도 이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아무 불평도 없이 머리를 꼿꼿이 들고 기개 있게 더위를 싸워 이긴 장한 꽃이 아니던가.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그 어느 옛날인가, 왕의 신임이 있던 장군이 있었는데 반란을 꾀하던 간신들이 미리 장군을 모함해 사지에 몰아넣고는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장군은 간신들의 음모를 깨부수었지만 자신은 부상으로 죽게 됐다. 그런데 그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맨드라미라는 전설이 있고 한여름 최고의 무더위 속에서도 핏덩어리처럼 뻘건 꽃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서 있는 요량을 보면 과연 대단한 장군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그러니 꽃말이 열정, 수호, 지킴이로 됐을 터였다.

한여름에 곧게 자라는 줄기 끝 부분에 붉은색이나 노란색의 밀집한 꽃술과 함께 꽃술의 밑이 서로 달라붙어 넓게 주름진 꽃이 피는데 그 모양이 닭의 볏같이 생겼다고 계관화(鷄冠花), 계두화(鷄頭花)라고도 부르고 영어이름도 cock’s comb, 곧 수탉의 머리빗이라 하여 동서양 양쪽 다 같은 이름을 붙여준 드문 사례라 하겠다.

사실 맨드라미야말로 사람들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위력에 힘들어하는 시기에 피는 관계로 그 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볼품은 없지만 이 꽃은 부귀(富貴)의 상징이라고 해서 옛 사람들이 뜰 안팎에 많이 심어왔다. 꽃잎을 따서 술떡인 증편(기주떡)에 살짝 얹어 붙여 모양과 색깔을 내고 소주에 담가 빨갛게 우려내면 고운 빛깔로 구미를 돋우기도 하며, 환약이나 가루약으로 만들어 토혈, 출혈, 하리, 구토, 거담, 그리고 여름철에 자주 찾아오는 설사나 이질 등에 처방되기도 한다. 실제로 맨드라미꽃 말린 것 한 주먹을 물 2홉으로 달여 1홉이 될 정도가 될 때에 1일 3회 식간 복용하면 여성의 백대하와 월경불순, 이질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맨드라미꽃을 줄기와 함께 잎 10g을 말려 가루로 빻은 뒤, 물에 달여 하루에 3회 마시면 3일 안에 변비가 해소되고, 계속해서 오랫동안 복용하면 요통이 낫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약에 익히 길들여진 도시의 우리가 그러한 효능을 알 턱이 없다.

여름꽃이지만 늦가을까지 꽃이 피는 데서 강인한 생명력이 있음을 알겠는데, 고려 중엽 때 대시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까지도 ‘맨드라미’라는 제목의 시에서 “의심컨대, 옛날 싸우는 닭이(我疑昔者有鬪鷄)/문득 강적 만나 힘을 다해 싸우다가(忽逢强禦至必死)/붉은 볏에서 피가 흘러내려(朱冠赤??血落)/화려한 비단 어지러이 땅에 떨어져(錦繡離披紛滿地)/ 그 넋이 흙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物靈不共泥壤?)…”라고 해서, 강인한 장군의 전설은 모르고 울타리 밑에서 싸움닭이 싸우다 흘린 피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냐는 정도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역시 꽃도 외모가 중요하기에 맨드라미가 시인 묵객의 애호를 잘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관으로 홀대를 받는 편인 이 꽃이 없었다면 우리의 긴 여름은 정말 자연의 위력에 순종하는 착한 양만이 존재하는 따분한 여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용감하고 기개 있는 장군 꽃이 존재하기에 여름철 우리는 더위에 항복하지 않고 이를 이겨내면서 이제 곧 가을이 머지않았다고 스스로 버텨낼 힘을 얻는 것이리라.

재미있는 것은 흔히 봉숭아와 함께 여름 꽃의 대명사가 된 이 맨드라미가 나란히 일본으로 시집을 갔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 성종 5년(1474) 12월에 임금이 정구(正球) 등 22인에게 일본에 국왕의 사신으로 보내는 하직인사를 받고 위로주를 내리는데, 이때 사신들의 손에 각종 면포와 인삼, 화문석, 유기그릇 등 토산품과 함께 봉숭아씨 1봉과 양귀비씨 1봉, 맨드라미씨 1봉, 해바라기씨 1봉도 보낸다. 이것이 일본 땅에 우리의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전해진 최초의 일이 아닌가 하는데 이때 일본에 건너간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담은 꽃으로 등장해 사랑을 받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어느 시인은 자연이 표현하는 색깔은 그 색깔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영혼에 위로를 준다고 했는데, 서양 꽃에 밀려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 이 진한 붉은 여름꽃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붉은 피를 흘린 선현 열사를 기억하고 아직도 진실을 마주할 줄 모르는 일본 정치인의 오만과 독선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할 수 있을까? 광복 70년을 기리는 8월이 여름 무더위와 함께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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