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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출소자 일자리 늘어나면 재범 줄고 사회도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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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21 21:20:52 수정 : 2015-08-21 21: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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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맞은 구본민 한국법무보호복지公 이사장 지난 5월 구본민(57) 변호사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뜸 ‘잘 어울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단은 교정시설 출소자들의 성공적인 사회복귀 지원을 돕는 조직이다. 20년간 검사로 일하며 숱한 범죄자를 교도소로 보내 죗값을 치르게 한 그가 출소자 지원사업의 책임자가 되었다니, 아이러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취임 100일째인 18일 서울 양천구 공단 본부에서 구 이사장을 만나 이런 느낌을 전했더니 그는 “검사와 공단의 업무가 다른 것 같지만 큰 틀에선 그렇지 않다”고 했다.

“둘 다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업무인 동시에 인간이 자아를 실현할 조건을 만들어주는 업무이기 때문이죠. 공단은 죗값을 다 치르고 나온 사람이 재범 위험에서 벗어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끔 돕고 있습니다.”

구본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양천구 공단 본부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교정시설 출소자를 위한 기관에서 장기적으로는 범죄 예방의 최고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미래지향적 조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제공
구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중국 고전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인용해 “누가 잘못이 없겠는가, 잘못이 있어도 고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긴 하나 ‘사람’보다 그가 저지른 ‘잘못’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출소자에 대한 편견 해소야말로 구 이사장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사회가 ‘전과자’란 낙인을 찍어 소외시킨다면 너무 불합리하고 억울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출소자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한 사례를 많이 발굴해 널리 홍보할 계획입니다.”

구 이사장은 취임 후 전국 23곳의 산하기관을 돌며 현장의 애로와 건의에 귀를 기울였다.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확보’를 주문했다. 공단은 기업이 출소자를 고용하는 것을 꼭 껴안아주는 행위에 빗댄 ‘허그(HUG) 우수기업’ 인증사업을 펼치고 있다. 출소자를 많이 채용한 기업 대표에게 공항 출입국심사 간소화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한다. 하지만 출소자에 대한 편견과 홍보 부족 탓에 허그 인증을 받은 기업은 20여곳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허그 인증을 받은 곳은 주로 중소기업인데, 앞으로 대기업도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공단이 쓰는 사업비는 정부 예산이 80%, 자체 수입이 20%입니다. 정부 예산 확보도 중요하겠지만 대기업 등의 기부와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이 더욱 절실합니다. 주류업체나 사행성업체 등 우리 사회에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큰 업체들이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공단의 재범 예방 사업에 적극 동참하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아무래도 전문기술을 가진 출소자들의 사회 적응이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공단은 전국에 5곳의 ‘기능훈련센터’를 운영하며 용접, 배관, 영농, 기계 조립 등 기술을 가르친다. 여성 출소자에게도 의류 수선, 제과·제빵, 바리스타 등 ‘맞춤형’ 기술교육을 제공한다. 구 이사장은 “기능훈련센터 영역을 자동차 정비, 건설, 전기부품 생산 등 분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출소자들의 취업률이 높아질수록 재범률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구 이사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것은 공단의 지원 대상을 기존 출소자에서 범죄 피해자로 넓히는 것이다. 범죄사건 관련자들이 화해와 조정을 통해 사건 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범죄에 따른 개인과 사회의 피해를 복구해 나가는 이른바 ‘회복적 사법’의 실천을 위해서다.

“공단이 출소자, 즉 예전의 가해자에게 지원하고 있는 사업을 피해자까지 확대함으로써 현행 피해자 지원제도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진정으로 반성할 기회도 갖게 됩니다. 피해자 역시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화합’의 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구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광주지검 검사로 시작해 주중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 등을 거쳐 2009년 안산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던 200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무려 11년을 끈 당시 검찰의 ‘최장수’ 미제사건이었다. 덕분에 ‘태백산맥’을 열심히 읽었다는 구 이사장은 “표현의 자유를 우선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약 6년간 재야에 머물다 공직으로 돌아온 소감이 어떨까. 구 이사장에게 ‘바깥’에서 바라본 검찰은 어땠는지 물었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다소 경직되고 폐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보다 유연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고 업무를 처리했으면 합니다. 검찰도 사회의 한 구성원인 만큼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국민에게도 더욱 개방적인 자세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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