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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 믿을만 한가… 유럽문화 비판서

입력 : 2015-08-07 21:13:01 수정 : 2015-08-07 2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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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없는 정신·도구화한 이성… 독일식 합리정신이 1차대전 불러
히틀러 같은 악인이 이용 대표적
미시적 문화조류·시대담론 섞어
학술적 이해·예술적 필치 뛰어나, 방대한 분량에도 소설처럼 읽기 쉬워
에곤 프리델 지음/변상출 옮김/한국문화사/각 3만2000원
근대문화사 전 5권/에곤 프리델 지음/변상출 옮김/한국문화사/각 3만2000원


독일 역사가 에곤 프리델(1878∼1938)은 근현대 세계의 중심축이었던 유럽 운명을 예견했을까. 1·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갈갈이 찢긴 채 물리적 통합을 하고도 화학적 결합을 못하는 지금의 유럽 현실을 마주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았다고 무릎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영혼의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한탄할 게 틀림없다.

신간 ‘근대문화사’는 일종의 유럽 문화에 대한 자기비판서이다. 현대 문명을 이끌면서도 정작 자신은 통합하지 못한 존재가 현재 유럽이다. 물과 기름의 사회가 유럽이라면 과장일까. 프리델은 77년 전 이런 유럽의 현실을 예언한 1600여쪽짜리 명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특히 독일 나치가 초래한 비극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 지식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 책은 흑사병 발병 시기인 1340년대부터 1914년 1차 대전이 터질 때까지 600년 가까운 시기 유럽 문화를 관통한다. 저자는 우선 인간 이성의 세계 지배를 비판한다. 근대 철학을 꽃피운 임마누엘 칸트 철학의 핵심인 인간 이성이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성은 ‘형체 없는 정신’ 내지 ‘도구화한 이성’이며, 히틀러 같은 악인들이 이를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악의적으로 인용된 대표적 사례다.

에곤 프리델은 ‘근대문화사’에서 1·2차 세계대전이 독일식 합리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사진은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장병들을 사열하는 모습.
한국문화사 제공
프리델은 1·2차 대전은 독일식 합리정신이 초래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왜 지구(유럽)는 행복의 운명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민과 번민 속에 이 책 집필에 몰두했다. 그는 결국 1938년 3월 밤 10시쯤 4층 높이의 창밖으로 몸을 던짐으로써 시대적 책임을 졌다. 60세 때였다. 프리델은 오스트리아가 제3제국(히틀러 제국)에 ‘합병’되기 바로 직전, 나치를 피해 도망하라는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친구들과 나눈 체념적인 대화에서 자살을 암시했다. “우리의 세계가 끝장난 거야. 모든 게 끝났어, 끝났다고….” 그는 죽음으로 나치에 저항한 책임 있는 지식인이었다.

서재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에곤 프리델.
한국문화사 제공
프리델은 책에서 민족적 자괴감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유대인인 그는 ‘유대인의 정신’에 대한 반감, 즉 반유대주의를 감추지 않았다. 반유대주의는 19세기 등장했던 유대인 ‘자기혐오’의 일종이다. 동료 학자들은 “프리델은 나치가 등장하자 자책감에 시달렸다. 히틀러의 등장에 공범 의식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 책의 형식은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백화점식이나 기전체, 편년체와 다르다.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논리적 기술의 문화사 연구 방식도 아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힐데 슈필은 “정확한 학술적 이해와 섬세한 예술적 필치이면서도 매혹적인 문장들을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근대문화사’는 다른 유럽사와 비교할 때 미시적 문화 조류와 그 시대적 담론을 적절히 융합하고 있다. 중대한 정신적·정치적·사회적 발전 면모를 설명하면서 시대를 이끈 담론과 중심 인물들을 뚜렷하게 부각시켜 설명한다. ‘시대는 천재의 산물’이라는 명제로 시대를 이끈 인물들을 평가한다. 루터, 라파엘로, 프리드리히 2세와 루이 14세, 펠리페 2세, 스피노자…. 모두 자신의 삶에 시대정신을 실현한 인물들이다.

프리델은 후기에서 “우주 공간에는 신의 반짝이는 사유이자 축복받은 수많은 별이 운행하고 있다. 창조주가 그 별들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 별들 가운데 이 축복을 공유하지 않는 별이 딱 하나 있다. 이 별에는 인간만이 서 있을 따름이다. 어떻게 이런 일(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책을 번역한 변상출 대구대 창조융합학부 교수는 “프리델이 사망한 지 77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가 갈망했던 ‘흐릿한 불빛’ 하나 볼 수 없다”면서 “오히려 지금은 유럽이 직면했던 영혼의 위기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맞아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고 진단했다.

변 교수는 “그것도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길한 여러 징후가 지구촌 곳곳에서 감지된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소설처럼 쉽게 읽힌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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