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기획)지음/김효정, 최병진옮김/시공사/8만원 |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사진)가 기획한 ‘중세 시리즈’ 제1권이 번역 출간됐다.
에코는 로마제국이 몰락한 476년부터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1492년까지를 중세로 구분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들은 이 시기에 대부분 일어났다. 예컨대 게르만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민족들이 대이동을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유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와 라틴 문화가 결합하면서 대부분 유럽 국가가 태동했다.
특히 수백년에 걸친 이슬람 문화와의 다양한 접촉은 역으로 유럽이라는 정체성 형성을 촉진시켰다. 현재 이슬람권의 첨예한 문제이자 중동뿐 아니라 국제 정세의 판도를 뒤흔드는 갈등 구조 역시 중세 때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661년 카르빌라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4대 칼리프인 알리가 암살되면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 불씨가 만들어졌다.
중세 초기에는 고대에 비해 철학과 사상이 쇠퇴했다고 보는 관점도 틀렸다고 에코는 주장한다. 이 시기에 제기된 여러 논제들, 즉 우주와 세계와 신에 대한 설명, 신학과 철학의 관계, 종말론 등은 지금의 지식 담론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기초를 이룬 가장 중요한 철학자도 4∼5세기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오늘날의 그리스, 로마 고전들은 중세 수도원 필사실과 공방에서 라틴어 필사본으로 수없이 생산되면서 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대학과 그에 따른 교육제도 역시 중세 때 정착되었다. 최초의 대학이 1088년 볼로냐에서 설립됐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나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다양한 공연 문화의 소재도 이때 형성된 기사들이 제공했다. 빅토르 위고와 루이스 캐럴의 소설들, 뱀파이어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같은 현대 판타지 문화도 중세에 기반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 @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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