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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때문에 갈등하는 판사… 복수 위해 탈옥하는 어린 죄수…

입력 : 2015-08-06 21:18:39 수정 : 2015-08-06 21: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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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읽기 좋은 유럽소설 2권 여름의 정점에서 소설 속으로 피서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유럽 소설 2권을 소개한다. 국내에도 다수의 작품이 번역돼 독자층이 두터운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7) 신작 ‘칠드런 액트’(한겨레출판)와 국왕까지 팬임을 자처하는 노르웨이 대표작가 요 네스뵈(55)의 ‘아들’(비채)이 그것이다. 

매큐언의 신작은 영국 가사법원 여성 판사를 중심 화자로 내세워 법정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진지한 질문을 이어가는 사색적인 작품이고, 네스뵈의 두꺼운 소설은 사건 위주로 스피디하게 전개하는 대중소설에 가깝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두 작품 모두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만만치 않다.

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을 흘리네.”

슈베르트 가곡 ‘음악에 부쳐’를 피아노로 연주한 ‘칠드런 액트’의 주인공 판사 피오나는 크리스마스 파티 청중의 이례적인 기립박수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연주장을 빠져나와 폭우 속에 집으로 달아나듯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네는 예감처럼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피오나는 17살 소년 애덤에게 강제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린 ‘죄’밖에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애덤은 백혈병 환자다. 사흘 안에 수혈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병원 측이 법원에 판단을 요구했다.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기에는 3개월이 모자란 애덤은 물론 부모까지 완강하게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피오나는 병원에 찾아가 애덤과 음악을 매개로 교감을 하고 소년의 시까지 감상하면서 최종 판결문을 작성했다. 소년은 살아났고, 완강히 반대하던 부모와 소년은 결과적으로 모두 행복했다. 애덤이나 그의 부모 모두 교리를 충실히 지키려 했으나 단지 피오나의 판결 때문에 신에게 맞선 꼴이니 그들이 죄를 지은 건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의 고갱이는 정작 이 갈등 이후에 담겨 있다. 매큐언의 전매특허인 반전의 수사가 이번 작품에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정의에 대한 정의가 애매해지는 경계선의 고뇌가 폭우 속에 쓸쓸하다. 중년 부부의 갈등을 배경으로 행간에 밀도 있게 흐르는 음악 이야기와 법정의 다른 에피소드들을 읽는 충만감도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다.

네스뵈의 ‘아들’은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빠른 전개가 특징이다. ‘소니 로프투스’라는 어린 죄수는 살인죄로 장기 투옥된 상태. 그는 감옥 안에서 사제처럼 범죄자들의 고백을 들어주고 죄를 사하는 위치에 있다. 이상하게도 그 앞에 있으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신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서라도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로프투스는 한때 촉망받는 학생이었으나 아버지가 부패 경찰 혐의로 자살을 한 이후 자포자기 상태에서 부유층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면서 감옥에 남아 있기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
그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내막을 알고 오슬로의 감옥을 탈출해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중심 얼개다. 네스뵈는 형사 ‘해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해리 홀레’ 시리즈 연작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힌 작가답게 이번 소설에서도 경찰과 연계된 부패와 정의를 실현하려는 기민한 복수의 여정이 600쪽 넘는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덮지 못하도록 만드는 저력을 발휘한다.

용서는 오로지 신의 몫이지만, 인간은 인간끼리도 서로 용서받고 싶어한다. 연쇄살인으로 복수를 이어가는 주인공의 행각이 정의롭게 느껴지게 만드는 소설의 여러 장치들이 자칫 위험하지만, 인간의 용서를 바라는 인간들의 악행과 남루가 돌올한 작품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작품을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가장 현대적인 버전이라고 치켜세웠다. 워너브라더스는 전 유럽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이 소설 판권을 사들여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심오한 생각거리를 찾기보다는 더위를 피해 활자의 숲에 빠져들어 정적의 평화를 얻기에 맞춤한 소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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