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 |
슈베르트 가곡 ‘음악에 부쳐’를 피아노로 연주한 ‘칠드런 액트’의 주인공 판사 피오나는 크리스마스 파티 청중의 이례적인 기립박수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연주장을 빠져나와 폭우 속에 집으로 달아나듯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네는 예감처럼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피오나는 17살 소년 애덤에게 강제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린 ‘죄’밖에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애덤은 백혈병 환자다. 사흘 안에 수혈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병원 측이 법원에 판단을 요구했다.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기에는 3개월이 모자란 애덤은 물론 부모까지 완강하게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피오나는 병원에 찾아가 애덤과 음악을 매개로 교감을 하고 소년의 시까지 감상하면서 최종 판결문을 작성했다. 소년은 살아났고, 완강히 반대하던 부모와 소년은 결과적으로 모두 행복했다. 애덤이나 그의 부모 모두 교리를 충실히 지키려 했으나 단지 피오나의 판결 때문에 신에게 맞선 꼴이니 그들이 죄를 지은 건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의 고갱이는 정작 이 갈등 이후에 담겨 있다. 매큐언의 전매특허인 반전의 수사가 이번 작품에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정의에 대한 정의가 애매해지는 경계선의 고뇌가 폭우 속에 쓸쓸하다. 중년 부부의 갈등을 배경으로 행간에 밀도 있게 흐르는 음악 이야기와 법정의 다른 에피소드들을 읽는 충만감도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다.
네스뵈의 ‘아들’은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빠른 전개가 특징이다. ‘소니 로프투스’라는 어린 죄수는 살인죄로 장기 투옥된 상태. 그는 감옥 안에서 사제처럼 범죄자들의 고백을 들어주고 죄를 사하는 위치에 있다. 이상하게도 그 앞에 있으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신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서라도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로프투스는 한때 촉망받는 학생이었으나 아버지가 부패 경찰 혐의로 자살을 한 이후 자포자기 상태에서 부유층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면서 감옥에 남아 있기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 |
용서는 오로지 신의 몫이지만, 인간은 인간끼리도 서로 용서받고 싶어한다. 연쇄살인으로 복수를 이어가는 주인공의 행각이 정의롭게 느껴지게 만드는 소설의 여러 장치들이 자칫 위험하지만, 인간의 용서를 바라는 인간들의 악행과 남루가 돌올한 작품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작품을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가장 현대적인 버전이라고 치켜세웠다. 워너브라더스는 전 유럽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이 소설 판권을 사들여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심오한 생각거리를 찾기보다는 더위를 피해 활자의 숲에 빠져들어 정적의 평화를 얻기에 맞춤한 소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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