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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과 복수. 소설과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다. 극적인 반전이 이보다 흥미로운 것이 드무니 큰 줄거리를 이룬다. 홍수를 이루는 TV 막장드라마, 십중팔구 얼토당토않은 복수 반전이 뒤범벅되어 있다.

소설과 드라마만 그럴까. 돌아보면 세상사가 비슷하다. 우리나라 속담, “두고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다.” 서로 어울려 사는 농경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배어난다. 중국에서는 좀 다르다. “한번 두고 보자고 하면 10년”이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뒤집히는 피비린내 나는 중원의 역사가 반영된 걸까.

와신상담(臥薪嘗膽). 춘추시대 오(吳)왕 부차와 월(越)왕 구천 사이에 벌어진 복수극에서 생긴 고사성어다. 오월 싸움에서 손가락에 독화살을 맞은 오왕 합려. 죽음을 앞두고 아들 부차에게 “구천을 쳐 원수를 갚으라”는 말을 남겼다. 섶에서 잠을 잔(臥薪) 지 3년, 부차는 구천의 군대를 대파했다. 회계산으로 도망가 자살하려 한 구천, 12년 동안 매일 곰 쓸개를 맛보며(嘗膽) 복수의 칼을 갈았다. “구천을 처형하라”고 한 오자서. 제나라 공격에 반대한 오자서를 죽인 부차는 결국 구천에게 당해 목숨을 끊고 만다. 와신상담에 중국인의 정서가 녹아 있는 걸까. 그 말은 동양의 고전이 되어 있다.

도도한 역사의 강. 와신상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은 성어다. 아편전쟁(1840∼1842년) 이후, 멸만흥한(滅滿興漢)을 내걸고 청 제국을 뒤엎은 신해혁명(1911년) 이후 ‘수모받은 역사’를 반전시키기 위한 인내 전략이다. 성공했다. ‘G2’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묘한 와신상담을 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군국 기치를 내건 아베 신조 총리,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많은 일본인은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디지털로 복원된 70년 전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연설. 왜 복원했을까. 참담한 전쟁을 막으려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도 한다. 도쿄에서는 젊은 엄마들에 이어 고교생 5000여명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반(反)아베 시위’를 벌였다. “미래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라”고 외쳤다. 아베의 와신상담은 누구를 향한 걸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터뜨린 나라는 미국이 아닌가. 착각이 심한 것 같다. TV 막장드라마를 쓰는 것도 아닐 텐데.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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