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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대우조선 적자 너머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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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03 21:28:13 수정 : 2015-08-03 2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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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에서 적자로… 급전직하 대우조선
회계부정 아닌가
투명경영 갈 길 멀어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대주주이자 주채권기관인 산업은행이 응급처방을 준비하고 있다.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다.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겠다. 대규모 적자 탓에 4조5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될 자기자본을 늘리고 370%에서 900% 정도로 치솟을 부채비율도 끌어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우조선이 한숨 돌리고 나면 적자 쇼크에 대한 진상조사가 시작된다. 손실을 고의적으로 숨겼는지, 산업은행의 관리·감독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우조선은 올 2분기에만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의 적자 1조5000억원, 1710억원에 견줄 바가 아니다. 지난해 영업이익 4700억원대, 순이익 330억원이었다던 흑자기업이 반년 만에 3조원대 적자로 곤두박질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안다. 손실이 났는데도 흑자가 난 것처럼 꾸민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적자 3조원 가운데 2조원가량은 그동안 숨겨놓은 손실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실이라면 사상 최악의 실적 쇼크가 아니라 ‘사상 최악의 분식회계 쇼크’다. 혹시 2조원짜리 회계분식 의혹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겠다면 미국의 엔론 사태를 떠올리면 된다.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으로 2000년에 포천 500대 기업 중 매출액 기준 7위에 오를 만큼 잘나갔던 엔론이 다음 해 12월 파산한 것은 회사 부실 은폐 조작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내부자 거래 조사 결과 약 15억달러(약 1조 5000억원)를 분식 회계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우조선의 2조원보다도 적은 액수다. 대우조선의 회계 부정이 사실로 밝혀지고 한국이 아닌 미국 기업이었다면 엔론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이 될 수도 있다.

김기홍 논설실장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은 이곳이 미국이 아닌 한국 땅임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대우조선이 떠내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내은행들이 대우조선에 빌려준 돈은 21조7000억원이나 된다. 은행들이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은행은 물론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다. 비리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더라도 엔론 회장과 최고경영자에게 선고된 ‘24년 징역형’ 같은 중형이 내려지는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회계부정 책임자들에겐 솜방망이 맛을 보여주는 게 우리네 관행이다. 벌써 부실 은폐 축소 의혹에 대해 하나같이 모르쇠다. 특히 산업은행은 2000년부터 대주주가 돼 15년 동안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했으면서도 손실을 몰랐다고 둘러댄다. 산업은행이 거느린 자회사가 100개도 넘는다는데 그 회사인들 감독이 제대로 됐을 것 같지 않다. 산업은행에 드리운 관치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내는 일도 시급하다. 회사가 쪽박을 차고 있던 와중에도 고재호 전 사장은 지난해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발전기반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여금 3억6000만원을 포함한 9억여원의 보수를 챙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실 은폐와 도덕적 해이가 회사 경영진이나 채권단도 모르게 저질러졌을 리 만무하다.

회계부정은 경영 실패가 아니다. 기업과 국가 경제를 갉어먹는 범죄 행위다. 그런 회계부정이 우리 기업 풍토에선 고질병 수준이다. 김우중의 대우그룹은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일삼다 해체되면서 한국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게 했다. 그런 사건을 겪고도 회계 장난이 끊이지 않는다. 오너가 평생 일군 목숨 같은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대우 사례를 지켜보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회계부정을 기업경영의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때만 되면 사면 운운한다. 한국의 기업 회계 투명성이 세계에서 꼴찌를 차지한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기업 경영의 제일 덕목은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회계 시스템 강화와 엄벌로는 부족하다. 투명경영 정도경영의 경영 철학이 확고해야 한다. 물고기가 썩을 때는 머리의 눈 주변부터 썩는다는 말이 있다. 가족경영에서 가족전쟁으로 비화한 롯데시네마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구멍가게만도 못한 전근대적 경영 행태에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일 수 없다. 그게 딱 우리 수준이다. 우린 아직 멀었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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