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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日과거사 잊지 않도록 ‘負의 유산’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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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02 22:01:15 수정 : 2015-08-03 0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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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유네스코 수정 등재’ 막후 역할한 최재헌 이코모스 코리아 사무총장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논란을 계기로 국내 일제강점기 ‘부(負)의 유산’을 알려야 합니다.”

최재헌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코리아(Korea)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부의 유산을 통해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대학교 세계유산학과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지난 6월 말부터 지난달 초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우리 측 전문가 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부의 유산의 예로 용산 미군기지 터를 꼽았다. 그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관동군으로 물자를 보낸 병참기지였고 관동군에 동원된 조선 청년들의 훈련장이었다”며 “일본이 (역사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병참기지로 활용된 미군기지 터를 통해, 피해를 입은) 주변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알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재헌 이코모스-코리아 사무총장은 지난 6월 말부터 지난달 초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우리 측 전문가 대표로 참석했다. 최 사무총장이 WHC 회의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재헌 사무총장 제공
최 사무총장은 조선인 5만7900여명이 강제징용된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두고 한·일 간 줄다리기가 계속된 독일 본 WHC 회의장의 숨가빴던 분위기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일본이 전 세계 앞에서 스스로 강제노동을 인정했다며, 우리가 문화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최 사무총장은 “등재가 확정되자 각국 대표들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잘했다’, ‘너희가 분발했다’고 축하했다”며 “(세계유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본이 강제노동을 인정했다고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승리는 한국 대표단의 노력과 일본 대표단의 미숙함이 맞물리며 빚어진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 정부는 WHC 회의가 열린 본에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공식 대표단 15여명을 파견했고 이들은 밤잠을 설치며 위원국들을 설득했다. 최 사무총장은 “우리 대표단은 하루에 1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복도에서 외국 대표단을 한 명씩 만나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측 대표단은 실수와 결례를 연발했다. 대표단이 정식 외교관이 아닌 총리실 소속 직원 위주로 구성된 탓이다. 그는 “회의장 옆에 카페가 있는데 일본은 각국 대표단 5명 정도씩을 자기들 자리로 불러 설득 작업을 벌였다”며 “한 포르투갈 대사가 일본 대표단에 자신은 당신들 대사가 아니라며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WHC 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중국도 한국을 지지했다. 일부 중국인들은 일본 대표가 회의장에서 연설을 할 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회의장 전체에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 관한 성명서도 뿌렸다”며 “성명서는 ‘이와 같은 시설이 세계유산이 되는 게 수치다’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대표단의 발언문 중 ‘others’(여타 국민)란 부분도 우리와 중국 측 간 교감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등재 결정이 하루 미뤄지는 이례적인 상황도 연출됐을 정도로 한·일 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당초 지난달 4일 오후(현지시간)에 36개 신규 안건 중 13번째로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5일 오후로 결정이 미뤄졌다. 최 사무총장은 “일본이 하루 시간을 벌어 표결로 가려고 했다”며 “그런데 의장국인 독일을 포함해 19개 위원국이 회의를 열어, 절대 다수가 (한·일 양국이) 합의를 못 할 경우 내년으로 투표를 미루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결정은 표결로 가려던 일본을 오히려 궁지로 몰았다.

그렇다면 이코모스 권고안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일까. 이코모스는 5월 중순 권고안을 통해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면서도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해석 전략을 마련하라’는 문안을 포함시켰다. 그 뒤 이 문안은 위원국을 상대로 한 우리 측 설득 논거로 활용됐다. 최 사무총장은 “이코모스 권고안은 서류검토인원과 실사인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다”며 “서류검토인원 1명이 바로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일본이 한정한 1910년이란 시기를 계속 문제 삼자 한국인 서류검토인원이 이코모스 권고안에 전체 역사란 문안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 문안의 최초 발견자도 최 사무총장 일행이었다. 그는 “이코모스가 5월 초 일본에 등재 권고안을 미리 보냈는데, 일본은 그것을 곧바로 다른 위원국에 배포했다”며 “다른 위원국에 사전 배포된 등재권고안을 우리가 받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 사무총장은 “세계유산 분야의 전문인력을 키우고 국제적으로 감시하는 눈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국제적인) 전문가 그룹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적인 관심 증가도 필요하다”며 제도와 기반이 동시에 이뤄질 때, 세계유산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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