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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맞서고 있으면서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무지로 인한 공백을 편견으로 채우려는 위험한 의식이 미국에 존재한다. 미국 첩보 역사에서 북한은 가장 오래 지속되는 실패 사례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국장을 지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의 말이다.

CIA의 작전 실패기라 할 수 있는 ‘잿더미의 유산’에는 6·25 전쟁과 관련한 CIA의 오판 사례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가장 결정적 오판은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을 무시한 것. 그런 판단을 한 근거는 적들의 역정보였다. “CIA가 고용한 주요 한국 요원들은 북한 ‘자산’을 관리하라고 보낸 자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사실상 적들을 위해 일했다. 우리가 받은 보고서는 거의 적들로부터 나왔다.” 당시 CIA 서울지부장 존 다이먼드 하트는 한국 요원을 ‘사기꾼’이라 했다.

저자 팀 와이너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IA가 일급 정보기관이 되지 못한 건 일급 스파이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마오쩌둥이 말했듯 첩보원은 인해(人海)를 한 마리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어야 한다. CIA는 그런 요원을 길러내는 데 실패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첨단장비가 첩보 현장에 등장하지만 결국 정보기관의 역량은 스파이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해외 첩보전에서 명성을 날리는 이스라엘 모사드는 공식 훈련을 받은 요원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만명의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파이 혐의로 복역 30년 만에 풀려나게 된 조너선 폴라드도 그중 한 명이다. 유대인인 그는 미 해군정보처에서 일하며 이스라엘에 1급 기밀 수만건을 넘겼다. 미 정보당국은 “수백년을 수감시켜도 모자랄 정도의 중죄인”이라고 석방에 반대했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구명 활동은 집요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그의 석방에 “수십년간 애쓴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위키리크스의 미 국가안보국(NSA) 감청 폭로는 전 세계 첩보전의 실상을 드러냈다. 그레그 전 대사의 말처럼 북한은 여전히 두꺼운 방호벽에 둘러싸여 있다. 미 첩보 흑역사는 그렇다 치고 우리 국가정보원의 역량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이번 해킹 의혹 파문을 지켜보면서 그나마 한 차례 ‘북풍 수사’로 와해됐다가 어느 정도 복원됐다는 중국 내 대북 인간정보(Humint)망까지 흔들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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