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에서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이효석문학상을 안겨준 ‘요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허무를 폐허 위에서 아름답게 채색하는 단편이다. 차선재가 고교 시절 홀로 방에 박혀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한 것은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알고 싶었”고 “얼마나 작은 세상이 이렇게 큰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확인하고 싶었”으며 “그걸 다 분해하고 나면 잘못된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캠퍼스 1학년 시절 만난 장수영이라는 여학생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이 들었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고향집에 다녀오겠다던 그네와 소식이 끊어진다. 기숙사에 꽂힌 편지 한 장이 전부였고 선재는 두고두고 그네의 모호한 편지 구절을 되새기며 청장년을 보냈다.
36살 때 독립시계제작자가 되어 매스컴에 등장한 선재에게 베를린에서 수영이 메일을 보내와 그들은 만날 약속을 하지만 아버지의 와병으로 무산되고, 다시 50대가 되어 시계전시장에 수영이 찾아와 그들은 밀린 이야기를 시작한다. 늘 그 의미를 궁금해하던 선재도 이제야 수영의 편지 구절을 이해한다.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난 생각했어.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아.” 선재가 수영에게 헌정하려는 시계 제목은 그리하여 ‘요요’가 되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지만,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시침과 분침처럼 인간의 기억이 특정 시간의 체온을 다시 붙잡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애틋하다.
표제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알코올중독자 규호와 헤어진 그의 애인 정윤이 술집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로 채워진 명품이다. 규호가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이라는 남자 이야기는 서글프고, 끝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혼자 남아 빈 앞자리를 바라보는 결말은 소주 뒷맛처럼 씁쓸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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