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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달콤한 이야기 대신 흥미·재치 듬뿍 뿌려

입력 : 2015-07-30 20:54:07 수정 : 2015-07-30 20: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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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소설가 김중혁(44·사진)은 재치 있게 공을 몰아 가는 축구선수 같다. 네 번째 소설집이자 그가 첫 연애소설집이라고 명명한 ‘가짜 팔로 하는 포옹’(문학동네)에 실린 8편의 경쾌한 단편을 읽은 소감이 그렇다. 군더더기 없는 지문과 대화로 빠르게 몰고 가는 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골문이 보인다.

이번 소설집에서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이효석문학상을 안겨준 ‘요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허무를 폐허 위에서 아름답게 채색하는 단편이다. 차선재가 고교 시절 홀로 방에 박혀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한 것은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알고 싶었”고 “얼마나 작은 세상이 이렇게 큰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확인하고 싶었”으며 “그걸 다 분해하고 나면 잘못된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캠퍼스 1학년 시절 만난 장수영이라는 여학생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이 들었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고향집에 다녀오겠다던 그네와 소식이 끊어진다. 기숙사에 꽂힌 편지 한 장이 전부였고 선재는 두고두고 그네의 모호한 편지 구절을 되새기며 청장년을 보냈다.

36살 때 독립시계제작자가 되어 매스컴에 등장한 선재에게 베를린에서 수영이 메일을 보내와 그들은 만날 약속을 하지만 아버지의 와병으로 무산되고, 다시 50대가 되어 시계전시장에 수영이 찾아와 그들은 밀린 이야기를 시작한다. 늘 그 의미를 궁금해하던 선재도 이제야 수영의 편지 구절을 이해한다.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난 생각했어.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아.” 선재가 수영에게 헌정하려는 시계 제목은 그리하여 ‘요요’가 되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지만,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시침과 분침처럼 인간의 기억이 특정 시간의 체온을 다시 붙잡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애틋하다.

표제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알코올중독자 규호와 헤어진 그의 애인 정윤이 술집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로 채워진 명품이다. 규호가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존’이라는 남자 이야기는 서글프고, 끝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혼자 남아 빈 앞자리를 바라보는 결말은 소주 뒷맛처럼 씁쓸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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